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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Mar 06. 2022

누누, 슈가, 챨리

우리를 거쳐간 멍멍이들

혼자니 심심하다며 외동딸내미인 똥깡님은 동생을 낳아달라고 자주 보챘었다..

'동생 낳으면 넌 그날부터 찬밥이야'라고 대꾸하며 버티고 버티다 동생 낳아달라고 안하는 대신 멍멍이를 키우기로 합의를 봤다.

똥깡님이 어리기도 했지만 캐나다에서 키우니 한국말로 '찬밥'이란 정의를 가르쳐 주는데 무척 힘들었다. 영어로도 비슷한 어감의 말이 있을테지만 아지매나 나나 그건 알 수 없었으니...


어떤 녀석을 들여야 할지 아지매와 함께 알아보기 시작했다. Dog Guide 책자와 다른 자료들을 살펴본 후 사냥개 종류라 조금 염려되긴 했지만 브리태니 스패니얼(Britanny Spaniel) 종자로 결정했다. 괜찮은 사육자(Breeder)를 물색하다 온타리오주의 틸슨버그(Tilsonburg)에 있는 Downwind Kennel과 연락이 닿았고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Downwind Kennel

그 때는 토론토의 브램튼(Brampton)에 살 때였기에 온 가족이 401 고속도로를 타고 지금 살고 있는 런던 쪽으로 한참을 달려갔다. 이리호(Lake Erie) 부근의 그 집(kennel)에 도착해 브리태니 스패니얼 강아지들을 만났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귀여울까? 녀석들이 너무나 귀엽고 이뻤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우박으로 바뀌자 개 축사의 양철지붕이 시끄러워졌다. 자갈이 떨어지는 듯한 그 찐한 소음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강아지들에게 푸욱 빠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더 이쁘고(숫놈인데..) 건강해 보이는 녀석을 골라 데려 가기로 결정했다. 법적으로 엄마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3개월을 조금 넘긴 애였고 똥깡님은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누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누의 엄마 모습. 누누를 데려왔던 그 시기의 사진이 다 없어졌다. ㅠㅠㅠ


2003년이었고 3천불을 지불했다. 캐나다 케널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족보 있는 녀석이라 몸값이 꽤나 했다. 똥깡님이 찬밥될걸 면해 주는 녀석이라고 돈이 좀 들어도 뼈대있는 집안의 멍멍이로 하기로 했네. 


누누는 데리고 오는 날부터 차멀미를 했다. 공식 족보 문서가 배달되어와 가문은 증명됐지만 촌놈은 촌놈이었다. 그런 누누를 데리고 아지매는 강아지 훈련과정에 등록했다. 펫샵에서 하는 4주짜리 과정을 마치고 아지매가 꼼꼼하게 훈련을 시켜 말을 잘 들었다. 딱 하나.. 철부지에다 힘이 넘친 녀석이라, 산책을 나가면 항상 앞서서 우릴 끌고 갔다. 좀 우아하게 걷자며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 봤는데 모두 실패.. 그리고 촌놈은 촌놈이라 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면 꼭 멀미를 했다.

누누는 성격이 온순해 거의 짖지 않았고, 대소변은 실외에서 봤다. 볼일을 보고 싶으면 문 앞에서 기다렸고 급하면 급하다고 표현을 했다. 훈련을 하는 곳에서는 영어로 교육했지만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섞어 했기에 이 녀석은 두 가지를 다 알아들었다. 똑똑하더라고..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지매에게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해 고생했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알러지 전문 의사와 상담도 여러번 했지. 그러다 알게된 사실.. 누누가 아지매의 알러지 제공자였다. 누누의 털이 공계롭게도 아지매와 맞지 않았다. 결국 비싸게 데리고 온 뼈대있는 녀석을 우리 집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입양 보내기로 하였다. 

주위에 소문을 내며 이리저리 알아보다 누누를 잘 아는 담당 수의사가 데려갔다. 


기르던 멍멍이가 사라져 똥깡님에게 정서적으로 영향을 줄까봐 다른 강아지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는 걸 염두에 두어야 했고.. 책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보니 꼬통 드 뚤레아(Coton de Tulear) 종자가 적합했다. 얘의 털은 Fur가 아닌 Hair.


토론토 동쪽의 시골 두 군데 breeder를 찾아가 강아지들을 살펴 봤는데 얘들도 무척 귀엽다. 긴 털이 매력 포인트라고 하던데 우리에겐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털이 적게 빠지기에 알러지 문제가 없다는 Breeder들의 말이 우리 귀에 쏙 들어왔다. 꼬통 드 뚤레아 종자로 하기로 결정했지만 breeder들이 부르는 가격이 너무 비싸(특히 암놈 강아지) 망설이던 중, 혹시나 한국에 그 종자를 키우는 곳이 있나 검색해 보았더니 충남 공주에 한 곳이 있었다.


2005년, 한국에 나가 있는 동안 공주로 찾아갔다.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암수 한 쌍의 두번째 새끼 중 몇 마리가 남았다며 사장님이 보여주셨다. 축사(Kennel)도 아주 깨끗했는데 아쉽게도 사장님네 상호를 잊어버렸다..

귀엽고 건강한 녀석으로 정했고, 캐나다로 가져가는데 필수인 의료검사(광견병 검사 등등) 서류를 사장님이 해주시기로 했다. 50만원을 받으시겠다는데 캐나다로 데려간다고 한 마리를 더 주시겠단다. 캐나다에 비하면 너무 싸다.

두 녀석을 내 사무실에 데려와 출국할 때까지 거기서 길렀다. 나무 상자로 틀을 만들고 넣어두었는데 지들끼리 너무 잘 논다. 

2005년 11월. 오른쪽 녀석이 슈가, 왼쪽은 둘리

이제 캐나다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이동식 개집(Crate) 하나에 두 녀석을 넣어 인천공항으로 데리고 간 다음 잘 먹이고 쉬를 뉘인 후 수속절차를 밟았다. 델타(Delta)항공에 우리 모두 몸을 싣고 디트로이트로 날아갔다. 디트로이트공항에 도착하여 이 녀석들이 담긴 Crate가 나오기에 다가갔더니 얘들이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짖는다.. '아저씨 어디갔었어요? 한참동안 깜깜해서 무서웠어요'라고 푸념하는 듯.. 이쁜 녀석들. 검역서류를 보여주니 미국 검역소를 쉽게 통과했다. 

한 마리는 호영이네 주기로 했기에 디트로이트 공항에 아지매와 호영엄마가 같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장시간 비행에 지쳤지만 집으로 가려면 2시간을 더 가야한다. 애들을 차에 태우고 디트로이트 공항을 출발해 캐나다 국경을 지나 런던 집에 도착.. 어린 이 녀석들에겐 정말 장거리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비행기 화물칸에서 열 몇 시간을 있었으니..  

미국-캐나다 국경을 건너는데는 아주 수월했다.


런던 집에 도착한 후


똥강님이 우리 강아지는 슈가(Sugar)라고 이름을 지었다. 꼬똥 두 뚤레아 종자의 길고 흰 털을 보고 설탕같다며 그렇게 불렀다. 호영네는 둘리라고 이름 지었고..

슈가는 씩씩하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이 녀석이 자라면서 우리집 가구 여러 곳을 이빨로 갉아 상처를 많이 냈다. 그리고 발톱 때문에 마루바닥에 흠집을 내기도 했지. 발톱 피해를 막기 위해 발톱커버를 사다 씌워주기도 했었다. 그 때 살던 집 마루는 부드러운 나무였기에, 다음 이사가는 집을 수리할 때는 더 단단한 하드우드 재질로 바꾸었다.

호영이네가 데려간 강아지(둘리)는 완전 내성적이었다. 너무 내성적이고 낯선 사람을 기피하던 애라 그 집에 적응하는데까지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었다. 돌아가신 호영아빠가 엄청 이뻐했었는데..


슈가는 훈련을 시켜 집 안에선 대소변을 절대 하지 않았다. 아침과 저녁에 밥을 먹자마자 마당의 울타리에 내 놓으면 거기서 볼일을 다 보고 들어왔다. 날씨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겨울이 되면 참 힘들었다. 눈이 많이 오는 캐나다 날씨이기에 슈가가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울타리에 쌓인 눈을 미리 치워놓아야만 했다. 안그러면 눈 속에 이 녀석이 파뭍혀 버리니.. 결국 가장인 내가 할 일이었다. 


슈가는 우리와 정말 잘 지냈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회색 부분이 많았지만 자라면서 흰색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다 가족이 모두 한국으로 떠나던 2012년, 런던의 다른 가정으로 입양보냈다. 한국에선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살라고 한다면 애한테 너무 가혹할 거라고 우리 식구들은 판단했기에. 그래서 이 녀석은 태어난 나라로 돌아오질 못했다.

꼬똥 드 뚤레아의 특징인 긴 털을 우리 가족 모두 싫어해 슈가는 단발로 다녔다.


챨리(Charlie)

2014년 여름, 캐나다로 돌아간 똥깡님이 그 해 가을쯤 찾은 몰키(Morkie) 강아지. 몰키는 마티즈와 요크셔 테리어의 혼혈로 몸집이 작다.. 

분양하는 집은 토론토 북쪽의 오릴리아(Orillia)에 있어 너무 멀기에, Breeder가 North York까지 데리고 나와 똥깡과 아지매를 만났다. 똥깡이 모아 놓았던 돈으로 강아지 값을 지불했고.


이 놈을 데려오곤 추워졌는데 너무 작은 놈이라 밖에 내보내기 그래 집 안에 쉬 패드를 놓고 쉬를 하게 해 그게 버릇이 되어 버렸었다. 그렇게 한 동안 지내다 아무래도 좋지 않아 집 밖에서 쉬하는 걸 가르쳤고 그 이후엔 밖에서 모두 다 했다. 초기에는 집 안 곳곳에 쉬를 싸놓아 아지매한테 뒤지게 혼난게 여러 번이었지. 역시 어려서부터 훈련을 제대로 시켜야 하는거였는데..


잠자는 것도 수정하는데 오래 걸렸다. 처음에 데려왔을 때, 작고 귀여워 똥깡님이 여기저기서 재웠었거든. 일어나는 시간도 지 맘대로 했었고. 그러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느껴 Crate 안에 들어가 잠을 자게끔 훈련을 시켰다. 그 Crate는 십 몇년 전 '누누'가 쓰던거였기에 몸집 작은 챨리에겐 그 집(Crate)이 저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놈은 완전히 자기만의 안식처로 여겼다. 혼나거나 자기가 불리하면 지 집으로 쏘~옥 들어가버려지.. 슈가도 그 Crate를 썼긴 했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길 좋아하질 않았었다. 근데, 챨리는 몇 번만에 들어가는 걸 배웠고 아주 좋아했다.. 밤에 Crate의 문을 잠그고 아침에 열어주니 아주 규칙적으로 살게 되었다.


요놈은 우리가 키운 멍멍이 중에 IQ가 제일 높은 것 같다. 머리를 핑핑 돌리는게 보일 정도이니.. 확실히 작은 애들은 큰 애들과 살아남는 방법이 다르다.

자기 주인인 똥깡님을 어떨 때는 깔보기도 하는 녀석이지만 군것질거리를 달라고 똥깡님한테 절대로 낑낑거리며 애원하지는 않는다. 딸내미의 엄격함을 알고 있기에..


딸내미가 중국 쿤밍에 와 있던 몇 달 동안은, 페피(Pepe)네 집에서 맡아 줬다. 둘째 딸인 제시카에게 Dog sitting을 맡겨서 돈이 많이 들었었다. 언젠가 중국에서 캐나다로 휴가 갔을 때 페피네 집엘 들렀더니 그 조그만 녀석이 페피네 송아지만한 개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지내고 있어 신기했다. 쪼끄만 놈이 기가 얼마나 세던지... 우리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그런줄 전혀 몰랐었는데 큰 놈들이랑 놀며 막 날아다닐 정도였다.. ㅎㅎㅎ


같이 태어난 놈들은 다 검정색인데 챨리만 갈색이다..
뒷마당을 순찰(?) 중인 챨리. 다람쥐가 나타나면 열심히 쫓아다니곤 했다.


똥깡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오며 챨리를 친구 집으로 입양보냈다. 슈가 때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어 마음이 아프지만, 똥깡님은 친구 집으로 보내는게 챨리에게 더 나을거라고 결정했다. 지 자식처럼 키우던 놈을 보내는 날, 똥깡님은 울고 난리가 났었다. 대학을 다니며 거의 혼자 키웠기에 다른 녀석들보다 챨리를 보내는 아픔은 더욱 컸을 것이다.

형제자매없이 외로왔을 똥깡님은 이렇게 멍멍이 3마리를 거치며 잘 자라 성인이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니 아지매는 강아지를 또 입양하자고 한다. 여기서 데리고 있다가 캐나다로 갈 때 데리고 가자고.. 그런데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애들이 너무 불쌍해 시골에서 살게 된다면 모를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국에서 2년 넘게 머물다 캐나다로 돌아간 똥깡님은 멍멍이를 키우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바쁘기도 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어느 곳일지 모르지만 나중에 정착하고 안정이 되면 그 때는 챨리 같은 놈을 데려올거라 예상된다. 똥깡님은 큰 개보다 작은 녀석을 좋아하더라고.


한국에 와서 개 훈련 TV프로그램을 여러 번 보았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궁금증을 느끼게 되었다. 개를 사람이랑 혼동하나? 그리고 훈련을 시키지 않고 키우나? 그리고 왜 그리 나쁜 개가 많아?

여러 번 개를 키워보며 좋은 개, 나쁜 개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으로 사나운 종자는 있겠지만 집에서 데리고 살려면 훈련은 필수이다. 개는 주인이 가르치는대로 되고, 주인을 닯아가게 되더라고. 

딸내미가 챨리에게 했듯이 이쁘다고 봐주면 지 맘대로 기어오르고 아무대나 올라가고 한마디로 개판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적절하게 훈련시키고 주인이 규칙을 만들어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그대로 따라오게 되는 것인데.

우리 식구들은 개를 좋아하지만, 개를 안고다니거나 하지 않는다. 개는 개이지 사람이 아니기에. 한국에서는 품에 개를 안고 다니거나 케이스에 넣어 매고 다니기도 하던데 신기하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보질 못한 풍경이다. 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기도 하던데 우리 가족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똥깡님은 '찬밥'이 무슨 뜻인지 성인이 된 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지인들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나? 어쨌든 똥깡님과 같이 자란 세마리의 똥강아지들에게 고맙다. 주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니느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면이 없지 않기도 하고.. 챨리는 잘 지낸다고 들었는데 아마 누누와 슈가는 수명을 다했을 듯 하다. 너희들과 지냈을 때 즐거웠었단다, 얘들아..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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