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스터 Chester Jul 16. 2023

더 높은 고도(高度, Altitude)를...

비행 이야기: 매일마다 벌어지는 항로상의 고도 차지 신경전

세상에는 많고 많은 항공사들이 있지만 비슷한 목적지로는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 도착하게 된다. 아무래도 고객과 항공사에게 가장 유리한 패턴으로 운항 스케줄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는 듯 하다.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항로로 비행기들이 몰려 다니다 보면 해당 항로에서 더 높은 고도를 배정받기 위해 조종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와지기도 한다.


제트 항공기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록 연료가 절약된다. 최적의 고도를 고려하여 항공사는 비행계획을 세우지만 현실은 그 최적의 고도와 거리가 멀 경우가 흔하다. 물론,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항공기에는 추가 연료를 싣는다.


동남아로 갈 경우 주로 한국 저녁이나 밤 시간에 출발하고,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새벽이나 아침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공항은 24시간 운영되지만 부산 김해공항의 경우 밤 11시~아침 6시까지는 공항이 폐쇄되므로 밤에 줄줄이 이륙하고, 아침 6시가 되면 많은 항공기가 줄지어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어느날인가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하여 동남아로 향하고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면,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 오는 항공기에게 우선적으로 고도가 배정된다. 이 날도 우리의 최적 고도는 34,000 피트(FL340)였지만 30,000 피트(FL300)를 배정받았다(FL=Flight Level). FL340과 FL320에는 인천공항을 출발한 다른 항공사 항공기들이 운항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관제 대화를 들어보니, 진에어와 에어서울 비행기였다.

일반적으로, 대만 공역의 중간쯤부터 필리핀행의 남쪽 방향, 그리고 좀 더 진행하면 홍콩/마카오행의 북서 방향, 방콕/다낭 등의 서쪽 방향 등으로 갈라지기에 그 즈음부터는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FL340으로 비행하던 진에어는 FL380으로 상승했기에 FL340과 FL360이 비어 있지만, FL300으로 비행하고 있는 우리 바로 위의 에어서울은 FL320에 계속 머물며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공기 고도는 방위로 결정되며 360도를 2개 구역으로 나눠, 동쪽 방향은 홀수, 서쪽 방향은 짝수 고도로 비행한다.)

대만 관제사가 이 에어서울에게 '더 높은 고도로 상승하겠냐'고 물어봤는데도 에어서울 조종사는 FL320에 머물겠다고 답한다... 아니 이 조종사는 연료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있나? 그리고 상승하고 싶어하지만 자신들이 막고 있어 올라가지 못하는 다른 항공기는 고려하지 않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질 않는 조종사다. 


우리는 최적고도 FL340보다 4,000 피트 낮게 1시간이 넘게 비행하고 있기에 연료에 신경이 쓰여, 언제쯤이나 이 에어서울 비행기가 우리 위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회사 운항실에 연락해 보자... 

회사로 에어서울의 편명을 적어 보내며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 보았다. 아, 다낭이구나.. 우리는 나트랑행. 

다낭행이면 중국 산야 관제구역을 지나가야 하건만 그 항로상 지정고도가 FL300이나 FL340임에도 왜 FL320을 유지한다고 저러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마 후, 대만 관제사가 에어서울에게 물었다. '전방 항로 제한 때문에 FL300과 FL340 중 택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제서야 FL340으로 올라가겠다고 답한다.


에어서울이 34,000 피트(FL340)로 올라가는걸 확인하고 우리는 FL320으로 상승을 요청해 허락을 받았고, 에어서울과 완전히 항로 분리가 된 후 우리의 최적 고도인 FL340로 상승할 수 있었다.


이 날의 에어서울 조종사는 FL340이 비어 있음에도 왜 FL320을 고집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높이 올라가면 우주방사선을 더 받는다며 가급적 고고도를 택하지 않으려는 조종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케이스인지도 모르겠다.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질 않았으니 알 수 없지 뭐..


어느 날인가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하여 비행계획서 상의 최적고도인 FL320에 도달하였다. 우리 바로 뒤에 간사이 공항을 출발한 제주항공도 최적고도가 FL320이었는지 관제사에게 FL320으로 상승을 요청하였지만 FL300까지만 상승하라고 지시 받았다. 아, 우리와의 항로 분리 때문이구나..

비행기의 컴퓨터를 확인해보니 우리의 최적고도는 FL340이다. 비행계획서와 다르네.. 그럼 우리가 올라가자~! 관제사에게 FL340으로 상승을 요청했고, 뒤이어 제주항공도 FL320으로 상승했다.

오사카에서 부산까지니 얼마 되지 않는 시간/거리이지만 우리나 제주항공이나 약간의 연료를 절약한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행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반드시 다른 항공기의 사정까지 배려해 가며 비행할 필요는 없는거지만 항공인(人)끼리, 같은 업종 종사자끼리 서로를 도우면 좋으련만...  


항로에서의 고도 신경전이 가장 심할 때는 동남아발 새벽/아침 한국 도착하는 비행일 것이다. 

태국 공역을 지나 베트남 공역과 중국 산야(Sanya) 관제구역 사이에서는 항로상 2,000 피트 고도 분리가 아닌 4,000 피트 고도 분리를 하기 때문에 제한이 많다. 그러다 정상적인 2,000 피트 분리를 하는 홍콩 공역, 대만 공역에 들어서면 위 고도가 비었을 때 또는 조만간 빌 듯 할 때 곧바로 상승을 요청해 고고도를 올라간다. 앞 뒤의 분리 거리를 고려하여 먼저 요청하는게 최고다.. 또는 주위 항공기가 목적지 별로 항로가 분리될 시점에도 마찬가지..


요즘엔 TCAS라는 장비가 항공기마다 다 장착되어 있어 내 주위 일정 반경 안에 항공기가 있는지 알 수 있기에 수월하다. 항공사 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의 대한항공 B727과 A300에는 이 TCAS라는 장비가 없었다. 그러다 A300에 TCAS 장치를 달았었는데 아주 기본형이었다..

중국 산야 관제구역을 FL290으로 비행 중인 모습. 4,000 피트 위로 비행하는 3대가 보인다. 약 20마일 전방, 30마일쯤 후방 그리고 80마일쯤의 후방
홍콩 관제구역에 들어와 2,000 피트 상승하여 FL310로 순항 중인 모습. 2,000 피트 위의 두 대가 보인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_nbMwItYaudv_f5jGe11Q7ipN9-W7QYI


작가의 이전글 쿤밍에서 살던 집, 바이샤룬위앤(白沙潤園)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