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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Jan 07. 2024

일본, 항공 분야는 왜 이 모냥일까?

비행 이야기: 지나친 매뉴얼화, 그리고 경직된 공무원 우선 문화..

얼마 전인 2024년 1월 2일 토쿄 하네다 공항에서 대형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착륙 중이던 일본항공 516편(A350)이 지상의 해안보안청 소속 항공기(Dash-8)와 충돌하고 전소해 버렸다. Dash-8 항공기의 탑승자 6명 중 5명이 안타깝게도 사망했지만 일본항공 516편 탑승자는 모두 탈출하였다. 불행 중 다행..

사고 이유야 조사해서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Dash-8 조종사가 활주로를 침범한게 아닌가 여겨진다. 일본에서 제일 복잡한 공항의 활주로 통제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일본에서 잠시나마 항공사 생활을 하였고, 일본으로 비행을 자주 다니면서 느꼈던 점은 항공에 관한한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예를 몇 가지만 적어보자..


어느날인가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접근 중이었고(사용 활주로: Rwy 06L) 우리 앞에는 피치항공사가 있었다. 바람이 잠잠하며 맑게 탁트인 시정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날이었지.

그런데 피치항공이 착륙하고 활주로를 빠져나가며 관제사와 교신을 시작했다. 영어가 아닌 일본어를 썼기에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점점 지상에 가까와지고 있었지만 착륙허가(Landing Clearance)를 우리에게 주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제사는 딴짓을 하고 있었다. 고도 500피트도 지나고... 이러다간 멀쩡한날 Go-around를 하게 될 상황이었다.. 참나원... 

90년대, 필리핀의 마닐라공항에 접근하다 관제탑과 교신이 되지 않아 일이 복잡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한밤중, 후진국 필리핀, 거의 30년 전이라 그러려니 한다고 쳐도 이건 일본인데??

관제사와 피치항공 조종사와의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타 간신히 우리가 착륙허가 확인을 요청했고 관제사가 착륙을 허가했다. 

관제사가 업무를 이렇게 해도 된단 말인가?? 후진국 항공사에서도 일했었지만 그런 나라의 관제사들도 이런 식으로 근무하진 않던데... 그 관제사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완전히 미친놈에게 막중한 자리를 맡긴게 아닌가 싶었다.. 


또 다른 날, 후쿠오카 공항에서 이륙하여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후쿠오카는 부산-제주보다 짧은 구간이라 매우 워크로드가 높은 비행이다.

이륙하고 후쿠오카 Departure Control 관제사와 통화한 후, 늘 그렇듯이 고도 16,000피트(FL160)로 상승하며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항로상의 BEETL 지점 즈음에 도달하면 고베 Control로 넘겨 준다.. 짧은 구간 비행에 바쁘게 이것저것 하다 가만히 보니 BEETL을 지나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고베 Control로 넘어가라는 후쿠오카 Departure Control의 지시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후쿠오카 Departure Control을 불렀다.. 그런데 답이 없네. 여러 번 불러도 답이 없다. 너무 멀리 떨어졌구나...

비행하고 있는 현 구간의 관제기관인 고베 Control을 불렀다. 그랬더니 관제사는 우리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으며 Ident를 하라고 그런다(Ident는 Transponder 장치의 기능).. 관제사의 목소리는 아주 당황스럽게 느껴지며 우리가 온다고 후쿠오카 Departure Control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한 듯하였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관제 레이더가 없는 후진국 상공을 비행하다 레이더 영역 안으로 들어온 상황도 아닌데...


이번에도 간사이 공항. 승객을 다 태우고 출발을 위해 항공기를 뒤로 미는(Push Back) 단계였다. A320/321 중 IAE사의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는 자동 모드로 엔진 시동을 걸 경우 엔진 뒷쪽에서 강한 바람이 부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뒷바람이 10kts(시속 18km)를 넘으면, 수동 모드로 시동을 걸던가 아니면 뒷바람 성분이 작아지도록 항공기 방향을 조정하여 자동 모드로 시동을 건다. 대부분의 조종사는, 상황이 허락하면, 편리함 때문에 항공기 방향 조정 방법을 선호한다.

이날은 북풍이 31kts로 불고 있었고 우리가 Push Back하면 뒷바람에 강하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었기에 Push Back 할 때 관제사에게 Heading East(항공기 머리가 동쪽으로 향하게)를 요청하였다. 그러면 바람 방향이 90도 정도 꺾이니까 자동 모드로 시동걸기에 적합해 진다.

지상 조업자에게 Heading East(항공기 기수를 동쪽으로)라고 알려줬고 항공기가 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리더라고. 그 때는 방위각 150도.. 이건 남향이지. 지상 조업자에게 이건 Heading South이고 Heading East로 만들어라라고 요구했더니 이게 Heading East 맞단다. 세상에나.. 방위각 90도가 동향, 180도면 남향인데 150도면 남동향이 되고 동이나 남, 둘 중 하나로 말해야 한다면 남향이지.. 지상 조업자는 계속 뻑뻑 우기고 있고..

지상 조업자랑 말이 영 되질 않아 관제사에게 우리의 방향을 Heading East로 허가해 준게 맞냐고 물으니 맞단다. 지사 조업자에게, 관제사가 Heading East로 허락했다고 다시 알려주니, 지상 조업자가 관제사에게 직접 통화한다. 일본어로 서로 대화하는데 결론은 그게 Heading East 맞다네..

다시 관제사에게 연락하여, 지상 지형물인 N1 쪽(=동향)으로 방향을 틀게 해달라고 요구하니 안된단다.. 주위엔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뭔 쇼를 하는건지??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는 괜히 지연만 될 것 같아 그 상황(일본식 Heading East, 150도 방향)에서 시동을 걸기로 했다.

이 일이 있은 얼마 후, 일본 피치항공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하여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했더니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도 똑같은 일을 겪더라며 일본 공무원들의 경직성에 대해 감탄했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매뉴얼에 스스로 빠져버린 꼴이 아닌가 싶다. 

이건 토쿄 나리타공항. Heading 210(빨간색)로 해 놓고 West라고 주장한다.. 남동(Southwest)이라고 하던가 남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비슷한 상황의 인천공항. Heading North(북향)이 340도 근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


피치항공에 입사하여 훈련을 받을 때를 빼놓을 수는 없지.

다른 나라의 항공사에 입사하면 가장 먼저 해당 국가의 조종사 면허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마다 전환 과정이 다른데, 항공법 시험은 가장 기본적이고 일본은 항공법 시험에 더해 기종 적응훈련, 시뮬레이터 훈련, 일본항공국(JCAB) 시험관과 구술 시험와 실기 평가를 거쳐야 한다.

훈련을 하던 날, 교관 할아버지는 내 뒤에서 나에게 의자를 똑바로(직각으로) 앉으라고 계속 요구했다. 비행기 조종석은 자동차 좌석처럼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허리가 좋지 않은 나는 등받이를 약간 뒤로 제쳐야 한다. 그런데 일본 교관 할아버지는 직각으로 앉아야 한다며 내 뒤에 앉아, '김상 똑바로 앉으세요'를 계속 반복했다. 왜그러냐고 물으면 일본항공국(JCAB) 시험관이 싫어한다나??? 여러 나라의 항공사에서 일해봤지만 이런건 처음 겪는거였다.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건이었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항공기 제작사에서 조종석 등받이를 왜 기울일 수 있게 만들었는지 JCAB는 정말 모르는 걸까??


시뮬레이터 훈련 과정 중, Go-around를 할 경우가 있다. 조종사 운항 매뉴얼에, 간사이 공항 Rwy 06에서 Go-around하면 3,000피트로 상승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피치항공에서 훈련하던 날, 3,000피트로 상승하던 나에게  교관 할아버지는 3,000피트가 아니고 5,000피트로 상승해야 한단다. 왜냐고 물으니, 3,000피트엔 결빙현상 구간이란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해야 JCAB 평가를 통과할 수 있단다.

자기들이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그 시나리오와 똑같이 해야만 한단다. 이게 뭐하는 건지?? 차라리 원숭이를 데려다 놓고 훈련을 시키지..

이런 소재 거리는 너무 많아 나중에 더 적어보기로 하자.


아무래도 일본의 항공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는 나리타 공항일 것이다.. 회전교차로가 있는 공항,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있던가? 지상에서 이동할 때 조종사들이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공항..

나리타공항의 도면. 위쪽의 좌우 방향이 짧은 활주로, 아래가 정상적인 활주로.

나리타공항에는 두 개의 활주로가 있지만 하나는 극히 짧다. 4,000 미터와 2,500 미터짜리 활주로가 있는 일본 제1의 공항.. 

일본은 공항 코드가 AA, BB, CC로 나가는 특이한 국가인데 AA은 나리타공항이다. RJAA. 사고가 났던 하네다는 RJTT. BB는 오사카 간사이공항, CC는 삿포로의 뉴치토세공항(RJCC).

그렇게 AA로 국가대표인 나리타 공항의 활주로는 이렇게 터무니 없게 짝짝이다. 2,500 미터로 밖에 만들 수 없던 이유는 개인 집의 알박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있던데 정말 희한한 일.. 

대형 항공기들도 2,500 미터짜리 활주로로 착륙을 시키는 나리타공항.. 거기다 Taxiway가 구불구불하고, 중간중간 회전교차로가 여러 개 있다. 회전교차로로 둥그렇게 만들어놓아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주아주 조심해야 하는 신기한 공항이다. 실수하기 너무너무 쉽지..

나리타공항에 비하면 인천공항은 완전 신세계다.. 넉넉한 공간에 빤듯빤듯하게 만들어 조종사 친화적인 인천공항. 녹색등화만 따라가면 되는 Follow Green 시스템은 최고 중의 최고다.


항공분야에 관한한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다. 

일본의 항공분야가 엉망인 건, 결국 일본의 항공 공무원들이 권위적이고 매뉴얼의 함정에 빠져 있고, 자신들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일본에 있었을 때 들었던 수 많은 JCAB에 대한 불평 얘기.. 일본 공무원들은 어쩌다 자신들만의 갈라파고스를 만들었을까?? 그런데 한국의 도로는 왜 이 모냥인걸까??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_nbMwItYaucUgWhh4jCqeVDBuVB-CI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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