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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여기, 기대 이상이잖아>

푸투라 서울 - 지구의 메아리 : 살아있는 기록 보관소

by 큥드라이브

<지구의 메아리 : 살아있는 기록 보관소 > 러닝타임 총 45분, 작품 8점

The artnewspaper

레픽 아나돌이 2025년 LA 예술 지구에 세계 최초 AI 예술 박물관 ‘데이터 랜드’를 오픈한다는 기사를 봤다. 마침, 푸투라 서울의 레픽 아나돌 전시 끝나기 1주 전이라 부랴부랴 갔다. 그냥 예쁘기만 할 것 같아서 기대 안 했는데, 솔직히 모든 작품이 좋았다. 게다가 전시 공간 전체가 눕거나 앉을 수 있도록 설계돼서 아주 편안했다.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는 전 세계 16곳의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자연 이미지, 소리, 향기 분자 등을 데이터화하여 ‘대규모 자연 모델(Large Nature Model, 이하 LNM)’에 학습시켰다. 이 과정을 담은 첫 영상을 시작으로 나머지 7 작품은 LNM을 통해 제작했다.

신작 <서울 바람>, <인공현실 : 태평양>은 천장에서 상영된다. 가뜩이나 영상이 파래서 신비로운데, 바닥의 거울로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서 한참 누워있었다. (서울 바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본다.) 도시 전역에 설치된 실시간 날씨 센서로 풍속, 방향, 온도를 수치화하여 자연의 패턴을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화면보호기 같기도 하고…


<살아있는 아카이브> 또한 양쪽에 거대한 스크린과 앞뒤로 배치된 거울 덕에 공간이 넓어 보였다. 이미지에 둘러싸인 상태로 모든 게 다 정보화, 수치화되는 걸 보니 좀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에서는 진짜 공간의 압도감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렇게 무섭도록 방대한 정보와 이미지가 인간을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진득-이 생각할 힘과 여유를 잃게 되는 것 같다.


Ai의 환각(hallucination)이 언젠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교묘해지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계 환각>에서는 양쪽의 자연 이미지가 가운데 스크린에서 만나 추상적인 영상을 만든다. 다리가 셋 달린 새, 유전자 변형된 꽃 같은 자연 이미지가 거대한 물결(?)이 된다. 스크린 밖으로 나올 것처럼 꿀렁대는데, 실재하지 않는 자연을 한번 더 추상화한 것이 과연 자연과 디지털의 융합인가?

AI모델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작품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외부와 반응하며 새로움을 만드는 비인간. 물론 이걸 기획하는 건 사람이겠지만, 앞으로 창의성의 정의는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사용될까?


어쩔 땐 이렇게 거대한 자본, 발전 속도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뭐 어쩔 거냐고 묻는다면. 오늘 맛있는 거 먹는 게 중요하지. 하면서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똠얌꿍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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