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픽 아나돌이 2025년 LA 예술 지구에 세계 최초 AI 예술 박물관 ‘데이터 랜드’를 오픈한다는 기사를 봤다. 마침, 푸투라 서울의 레픽 아나돌 전시 끝나기 1주 전이라 부랴부랴 갔다. 그냥 예쁘기만 할 것 같아서 기대 안 했는데, 솔직히 모든 작품이 좋았다. 게다가 전시 공간 전체가 눕거나 앉을 수 있도록 설계돼서 아주 편안했다.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는 전 세계 16곳의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자연 이미지, 소리, 향기 분자 등을 데이터화하여 ‘대규모 자연 모델(Large Nature Model, 이하 LNM)’에 학습시켰다. 이 과정을 담은 첫 영상을 시작으로 나머지 7 작품은 LNM을 통해 제작했다.
신작 <서울 바람>, <인공현실 : 태평양>은 천장에서 상영된다. 가뜩이나 영상이 파래서 신비로운데, 바닥의 거울로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서 한참 누워있었다. (서울 바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본다.) 도시 전역에 설치된 실시간 날씨 센서로 풍속, 방향, 온도를 수치화하여 자연의 패턴을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화면보호기 같기도 하고…
<살아있는 아카이브> 또한 양쪽에 거대한 스크린과 앞뒤로 배치된 거울 덕에 공간이 넓어 보였다. 이미지에 둘러싸인 상태로 모든 게 다 정보화, 수치화되는 걸 보니 좀 소름이 돋았다. 이 작품에서는 진짜 공간의 압도감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렇게 무섭도록 방대한 정보와 이미지가 인간을 더욱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진득-이 생각할 힘과 여유를 잃게 되는 것 같다.
Ai의 환각(hallucination)이 언젠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교묘해지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계 환각>에서는 양쪽의 자연 이미지가 가운데 스크린에서 만나 추상적인 영상을 만든다. 다리가 셋 달린 새, 유전자 변형된 꽃 같은 자연 이미지가 거대한 물결(?)이 된다. 스크린 밖으로 나올 것처럼 꿀렁대는데, 실재하지 않는 자연을 한번 더 추상화한 것이 과연 자연과 디지털의 융합인가?
AI모델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작품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외부와 반응하며 새로움을 만드는 비인간. 물론 이걸 기획하는 건 사람이겠지만, 앞으로 창의성의 정의는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사용될까?
어쩔 땐 이렇게 거대한 자본, 발전 속도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뭐 어쩔 거냐고 묻는다면. 오늘 맛있는 거 먹는 게 중요하지. 하면서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똠얌꿍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