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도 낡은 소리

<또 다른 현대미술> :뱅자맹 올리벤느

by 큥드라이브

1. 이 책 이전에 권미원 작가의 <장소특정적 미술>을 읽으며, 시각예술이 더는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맥락에 반응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참여를 이끌어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2. 하지만 뱅자맹 올리벤느의 <또 다른 현대미술>은 현대미술이 애처롭다고 이야기한다. (방금 봤던 작품들을 당신 침실에서도 보고 싶은지?) 솔직히 어느 정도 동의한다. ’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예술가인가, 문화기획자인가?‘, ‘이제 충격적이고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것에 지친다’고 느낄 때쯤 책을 읽어서 그런가.

3.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은 아무리 담긴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게다가 제프쿤스나 데미안허스트 같은 작가들이 어마무시한 돈을 벌어들이는 행보는, 소처럼 일해서 월급 받는 우리네 정서로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다.

4. 작가는 고전적 관점을 취한다. ‘예술가의 똥’보다도 완성도 높고 기술이 뛰어난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인정하게 된다. 미술사가 큰 흐름으로 모방 - 표현- 형식- 제도 등으로 변화했다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모방을 추구한다. 고전적 관점에서 화가의 솜씨를 통해 세계를 재발견하는 법을 배우기에 우리는 재현 예술을 사랑한다.

5. 그런 점에서 추상에서 구상으로 돌아온 화가들(말레비치, 쉬포르쉬르파스 운동, 자코메티 등) 그리고 미국 추상미술의 대가 폴록, 로스코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호퍼를 언급하며, 이런 구상 작가들이 시대착오적이고 ’ 반현대적‘이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6. 이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를 떠나 ‘좋다 ‘고 느끼는 작품의 본질적인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이 우리가 재현의 역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은 아닌가? 또한 구상은 명확하기에 애매모호함을 싫어하는 본성이 추상보다 구상을 더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7. 아쉬운 점은,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예술의 중심지를 넘겨준 프랑스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작가가 ‘최근 반세기 동안 미술계에서 외면당하기 위해 여성일 필요는 없었으며, 단지 아방가르드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라고 한 말에서 또다시 권력 구조를 느꼈다.

8. 작가가 언급한 ‘프랑스에 살았던 구상 작가들’, 즉 시대를 걸쳐 서로를 알아본 ‘진정한 예술가들‘이 쓴 또 다른 20세기 미술사는 여전히 백인 남성 위주다. 프랑스 회화를 풍요롭게 만든 이민자들 (반 고흐, 미로, 에른스트, 마그리트, 달리, 수틴, 모딜리아니, 자코메티, 몬드리안, 키리코, 호퍼, 피카소…)조차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탑승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9. 70년대 게릴라 걸스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서양미술의 유구한 전통을 부수고자 ‘여성은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가기 위해 벗어야만 하는가 ‘를 외치면 무엇하나.

10. 과연 소외받지 않는 역사가 있을까?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기에. 살아가면서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 할 작품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되는 작품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작가의 말처럼 한 방향으로 우상향 하는 진보적 관점이 아닌, 다원화된 시각으로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꽤 많은 관심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다.

11. 물론 우선순위는 후대에서 (권력자? 대중? 감상자? 후원자?) 정하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현대미술 #뱅자맹올리벤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술 융합시대에 예술 교육의 방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