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난임 일기

by 큥드라이브

코로나 이후에 처음 본 두 줄이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 기능이 있는지 이제 알았다. 얼마 전, 2023년부터 시작된 나의 난임 여정에서 처음으로 착상 비슷한 걸 경험했다. 너무 기뻐하면 이 작디작은 생명이 달아날 것 같은 마음에 항상 조심했는데, 오늘 1차 피검사에서 수치 5.8로 비임신 종결을 맞았다. 오늘로써 2차 시험관에 실패했다. 이제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한참을 울었다. 언젠가 생기긴 생기는 건가? 난자 채취를 또 하게 될까? 이러다가 내 몸만 축나면 어쩌지.


살면서 뭔가를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적당히 평탄한 길이 생겨서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신을 준비하면서부터 ‘네 생각대로 되지 않을걸?’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이걸 견딘다고?. 그럼 조금 더 어려운 단계를 줄게.’ 매 순간 퀘스트를 받는다.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끝없는 늪을 걷는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뭐가 이렇게 질퍽해서 한 걸음 떼어내는 데도 사방으로 진흙이 튀고 마음이 무거운 건지. 그래도 이 과정에서 남편과의 새로운 추억이 더 많아졌다. 같이 무겁게 걸으면서 눈치 100단이 되어버린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조금 힘겹지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기에 나의 난임 일기를 남겨놓는다.


인공수정 3회차 실패

2023년 4월에 1차 인공수정을 진행했다. 배에 과배란 주사를 맞는다는 것이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맞을만했던 주사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진행했던 터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5월에 수학여행이 있었다. 아마도, 비임신을 확인하고 다녀왔던 것 같다. 난포 터지는 주사는 시간이 중요해서 수업 도중에 잠시 화장실에 가서 후딱 맞고 나왔다.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변기에 앉아 주사를 찌르면서 2학기에 휴직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난임 휴직을 낸 후, 2번 연속으로 실패했다. 이때 혹시 시험관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은 들지만. 나도 남편도 모든 산전 검사에서 정상이었고, 젊은 나이이니 금방 될 것 같다는 확신이 그때는 있었다.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2024년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을 살아보자 싶었다. 수많은 배란 테스트기를 썼고, 배란 초음파를 보러 다녔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마음이 편하면 된다길래 정말로 임신에 대한 부담 없이 지냈다.


2025년 1월부터 시작한 시험관

1월 4일에 처음 차병원에 갔다. 그냥 제일 유명한 데 가보자는 마음으로 선택했던 것 같다. 더 나이 들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서. 엄청 힘들다는 것 빼면 시험관이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고 덜컥 병원부터 갔다. 과배란 주사는 인공수정과 비슷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다만 배가 자꾸 부어오르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1월 17일에 난자 채취를 했다. 다시 하라 그러면 못할 것 같다. 수면마취 부작용이었는지 채취 끝나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눈앞이 하얘지면서 몸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과 구역감이 올라와서 주저앉았다. 변기통 앞에 잠시 누워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다들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다. 몸을 회복한 후 여행을 다녀왔다. 1주일도 안 지나서 치앙마이를 다녀왔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7월 5일 1차 자연주기 이식

6월 30일에 마침 남편네 학교 시험기간이어서 조퇴를 내고 병원에 갔다.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식 날짜도 토요일로 잡혔다. 내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따로 약도 쓰지 않고 배란 날짜를 기다렸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7월 4일도 둘 다 시험기간 마지막 날이라 조퇴를 내고 병원 근처 숙소에 가서 쉬었다. 왜 일이 착착 진행되지? 싶었다. 이식은 오전 7:50분이었다. 배아 사진을 처음 보면서 엄청 큰 달덩이 같다고 생각했다. 5일 배양 감자배아 최상급이라고 했다. 왠지 잘될 것 같았다. 이식 후 1주일 동안 생리통, 소화불량, 어지럼증이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를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피검사 전날까지 간신히 참았다가 했는데 1줄이었다. 그리고 수치 0.2로 비임신 종결되었다.


8월 5일 2차 인공주기 이식

준비는 7월 30일부터 시작되었다. 이식 전 1주일간 프롤루텍스 1회, 프레다 1일 2알, 베이비아스피린 1알, 프로게스테론 질정 3알씩 사용했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싫었다. 그리고 이식일 이후에 약속되어 있던 가족 여행을 취소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슬프고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슬픔에 잠겨있는 동안 남편이 옆에서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5일간의 제주 여행이 하루 만에 급조되었다. 여행 가방을 싸고 바다에 몸을 담그고 전복을 원 없이 먹었다.


남편은 첫날부터 프롤루텍스 동영상을 열심히 복습하더니 약을 끊는 그 순간까지 주사를 책임져주었다. 아프기로 악명 높은 주사라 그런지 둘 다 겁을 잔뜩 먹었다. 한 대를 발발 떨면서 10분 동안 아주 천천히 주입했다. 나랑 남편이랑 같은 위치에서 주사할 경우 남편 목이 너무 숙여지는 바람에 2일 차부터 내가 책상에 앉고 남편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매일매일 10분간 주사를 놓는 남편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주사를 다 놓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마음 아팠다. 매일 서로 수고했다고 안아주었다. 감사했다.


제주도에서 놀던 짐 그대로 들고 병원 근처 숙소에서 푹 쉬었다. 8월 5일은 오전 9시에 이식을 했다. 5일 배양 최상급 감자배아였다. 이번에는 처음 보자마자 정말 감자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더 늦기 전에 빨리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빠른 게 느린 것 같기도 하고. 느리고 더딘 게 결국은 빠른 것 같기도 하고. 기다림이 기다란 직선이 아니라 뒤엉킨 실타래 같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내 감정에 물길을 내자고 다짐했다. 이식 끝나자마자 추어탕을 먹고 묵던 호텔에 연박으로 머물렀다. 계속 누워있었다. 아주 긴 잠을 잤다.


이식 4일 후에 테스트기에 손을 댔다. 미세한 두 줄을 보고 남편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조금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계속되었다. 집짓기 잘하라고 매일 기도했다. 다음 날 새벽 2시에 너무 배고파서 두유를 먹고 잤다. 뭐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리통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불안해서 테스트기를 했다. 조금 더 진해져서 안심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났다.


개학날 수업이 4개였다. 점심 먹고 나서 몸이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운동도 안 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기초 체온이 계속 높았다. 퇴근 후에는 무조건 누워있었다. 다음 날부터 첫 소변 결과가 흐렸다. 새벽에 소변을 몇 차례 보아서 농도가 낮아졌다고 생각했다. 불안했다. 맘카페에 들락거리면서 나와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몇 시간 동안이나 검색을 했다. 피검사 당일 아침에는 거의 한 줄에 가까운 테스트기 결과를 보았다. 그리고 수치 5.8로 비임신 종결했다.


남편과 나는 종종 물건을 어디에 두고 가거나 잃어버린다. ‘아 맞다. 내 00!’가 서로의 놀림 포인트이기도 하다. 덜렁대는 게 비슷해서 가끔 웃기면서도 답답한데. 우리 아기가 오다가 ‘아 맞다. 내 00!’하면서 두고 온 무언가를 가지러 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 일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오늘까지만 속상해하다가 다시 몸을 만들고 일상을 사랑하면서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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