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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롤로로 Jun 24. 2022

<우연과 상상>의 변증법

대립에서 변증으로

"우연이 삶의 틈입하는 세계의 조건일 때, 상상은 그에 대응하는 인간과 예술의 태도이자 무기." -이동진-


영화는 세 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연과 상상의 권력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니 우선 이야기들에 나타난 우연과 상상의 순간을 되짚어보자.


1. 친구의 썸남이 옛 애인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고는, 그 사실을 두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상상'을 통해 파멸을 회피한다.


2. 왕따인 '나'는 섹스 파트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그의 숙적인 '교수'를 유혹하여 사회적으로 파멸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교수가 쓴 소설 중 성애 부분을 낭독하며 그를 '상상'을 통해 유혹하지만, '우연'하게도 교수는 그 낭독에 진심으로 감명을 받고 둘은 진실된 정서적 교류를 나눈다. 하지만 곧이어, '우연'하게 낭독 녹음 파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며, 교수와 나 모두 사회적으로 파멸당한다.


3. '나'는 '우연'히 만난 '너'를 고등학교 시절의 애인으로 착각한다. 이는 '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애인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며, '상상'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회고한다.


세 개의 에피소드에서 우연과 상상은 서로 교차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상상이 우연을 극복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우연이 상상을 정복하며,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우연과 상상이 동화된다. 이는 연출 순서와도 연결이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른바 '홍상수식' 클로즈업과 이를 통한 시간 관계의 혼란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데, 여기서 우연과 상상은 대립항으로서 극명히 구분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시간 관계의 역행이나 뚜렷한 연출상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지만,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쏟아져 나오는 상당한 양의 대사와 고정된 카메라가 우리를 상상의 순간으로 이끈 후,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를 다시 우연의 세상에 내려놓는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둘의 융화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세 번째 에피소드의 두 주인공이 이른바 '역할놀이'를 시작하는 순간, 창문 너머에서 유리창을 통해 투과된 둘을 촬영하던 카메라는 집 안으로 넘어온다. 둘의 우연한 만남이 둘의 상상으로 '점프'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연과 상상>은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처럼 우연과 상상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점층적인 변증법이 가깝다. 내용과 형식 모두가 두 요소의 관계가 미세하게 변화하는 것을 포착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던질 질문은, 결국 "왜"일 것이다. 글쎄, 적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인상은 짙은 시간의 향이었다. 우연과 상상은 현대사회에서는 이상한 특별함이 되었다. 소통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수많은 우연을 접할 수 있지만, 격해지는 사회적 대립은 문제의 대안을 위한 상상보다는 각자의 편향에 포섭시키려고 맹렬하게 달려든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나에게 일어나는 우연을 곰곰이 반추하고, 가능한/했던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순간에 묵직한 대사와 정적인 카메라로 시간을 쌓아오던 카메라가 '화들짝' 우리에게 달려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상상을 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과 상상>은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당위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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