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개월 전의 일이다. 회사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도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공은 학부시절 내가 많이 따랐던 Y교수님이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평소 갖고 있던 숫기는 다 잊어버리고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은 2초 정도 기억을 더듬으시더니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셨다. 교수님께선 현재 안식년이시고 이 기간 동안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자문교수를 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언제 한 번 커피나 한잔 하셨다.
일주일 후 교수님과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몇 차례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교수님은 내게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시 하고 있던 시스템 쪽 H라는 기술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왜 아직도 H 기술을 하고 있냐고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한물간 기술을 잡고 있냐고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씀하셨다. 당시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기술을 부여잡고 있는 부서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고 부서를 옮길지 아니면 회사를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참이었다.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은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들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본인은 나보다도 더 많은 나이에 보장된 출셋길을 포기하고 불투명한 유학길에 올랐지만 지금 이렇게 교수를 하고 있다며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 내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우연히 마주친 교수님이 자문교수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점심을 한번 먹자고 하셨다. 나는 식사 전에 근 한 달간 교수님의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그리고 이 부서를 떠날 마음은 굳혔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를 계획을 세워보았고 다시 한번 조언을 구하고자 마음먹었다. 어쩌면 지금 이 점심식사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메뉴를 주문한 후 저번과 똑같이 '무슨 일을 하고 있냐'라고 물어보셨다. 뭐 워낙 바쁘신 분이시고 내겐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시 잊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예전과 똑같이 '시스템 소프트웨어 H라는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교수님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오 괜찮은 거 하고 있네, 이것저것 잡다한 거 하는 것보다는 H 쪽 기술을 공부하면서 기본기를 익히는 게 좋을 거야. 사람들은 한물갔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쓰이게 될 날도 있을 거고'. 당황스러웠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 기술을 잡고 있다간 큰일 날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지금은 H 기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식사 전 내가 세웠던 계획은 말도 꺼내지 못한 체 교수님의 말씀에 고개만 끄덕이기만 하다가 나왔다.
과연 나는 좋은 조언을 들었던 걸까?
한동안 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니까 물어본 거 기억도 못하시고 예전에 했던 말이랑 완전히 반대되는 말을 하시는 것 아닐까. 카페에서 내게 해주셨던 조언도 진정성이 없는 느낌이 들었고 바보같이 순수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나도 차라리 사무적으로 대할걸.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마치고 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왜 한 달 만에 생각이 바뀌셨을까?
어쩌면 이쪽 업계만큼 조언이 도움이 안 되는 곳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고위 임원은 박사과정 시절 주위 선배로부터 '너 인공지능 하면 굶어 죽는다'는 잔소리를 줄기차게 들어왔다고 한다. 20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은 '이론은 그럴싸하나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이란 소리를 들었으니 주위 선배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분은 흔들림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밀고 나갔고 마침내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윗분들의 주목을 받고 승진하게 됐다. 그분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모두 주변 만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꿋꿋이 밀고 나간 덕분이다.
그렇다면 자기 소신을 지키면 성공하는 걸까? 친한 학교 선배는 직장을 구할 시점에 모바일과 네트워크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애플의 아이폰이 나온 직후였고 삼성, LG 같은 전통 모바일 회사들이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먼저 입사한 친구와 선배에게 네트워크를 가르친 지도교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모바일을 갈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선배는 2년간 배운 석사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모바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더 나아가 지금처럼 그래픽카드가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알파고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고위 임원은 아마 여전히 일반 직원이었을 것이다. 아마 회사에서의 수명이 다할 때 즈음에는 그 당시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가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해 전통 모바일 회사들이 스마트폰 사업을 접고 모두가 아이폰만 사용하는 시대였다면 아마 학교 선배는 자신의 소신을 지킨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주위의 조언에 따라 모바일을 택했다면 지금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전혀 터무니없는 가정도 아니다. 고위 임원이 받은 조언은 틀렸고 학교 선배가 받은 조언은 맞았으나 이건 결과론적인 얘기다.
조언하는 사람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만 사실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업계에 정통한 대학교수도 한 달 만에 입장을 바꾸지 않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오지 않는 이상 조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갖고 있는 정보들을 총동원해 그럴듯한 미래를 예측해줄 수 있을 뿐이다. 단 선택의 책임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로 맺게 될 과실은 근사한 식사와 선물로 공유할 수 있지만 리스크의 부담만큼은 오로지 내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위의 조언을 너무 믿지도 너무 배척하지도 않고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조언을 들어보며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것만이 베스트 아닐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이 현실 속에서 나와 의견이 비슷한 조언을 들을 때는 오히려 선택의 리스크에 대해서 역으로 생각해보고 나와 의견이 다른 조언을 들을 때는 선택에 대한 나 스스로의 확신을 끊임없이 의심해보려고 한다. '짜식 넌 잘될 거야'라는 응원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