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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May 26. 2019

젊은 꼰대가 될 뻔한 사연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어요

입사하지 얼마 되지 않은 금요일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거의 매시간마다 알림이 울렸던 동기 들과의 메신저 방은 금요일 오후만 되면 회사차원에서 임직원의 워라밸을 배려하고자 하는 노력과 어떻게든 일을 해치우고 빨리 주말을 맞이하겠다는 개개인의 열망 덕분에 고요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퇴근 시간이 거의 임박한 오후 다섯 시 즈음 동기 한 명으로부터 불만을 담은 대량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동기는 꿀 같은 금요일에 퇴근을 늦게 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동기네 부서가 당일날 갑작스레 건물의 다른 층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동기는 그날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당해 입사자로서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교육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선 일반적으로 이사를 가는 날에는 본인의 짐을 싸고 다른 층으로 옮기는일 모두 업무시간에 이뤄지고 옮긴 자리에 컴퓨터 설치와 인터넷 연결만 끝내면 육체적인 노고가 큰 하루였기에 평소보다 좀 더 일찍 퇴근을 하는 것이 용인됐다. 그런데 동기는 신입사원 대상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짐을 쌀 수 없었다. 그리고 이사는 주말 내로 끝내야 했기 때문에 교육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짐을 싸고 옮겨야 했다. 동기의 입장에선 재수가 없는 날이긴 했다.


다른 날은 몰라도 금요일만큼은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동기의 불만은 재수 없는 하루가 아니라 부서의 선배들을 향하고 있었다. 당시 동기의 생각엔 선배들이 후배의 교육 일정을 배려해 자신의 물건을 대신 옮겨 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본인의 짐만 챙긴 채 쌩하고 집에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후배가 금요일 퇴근을 늦게 할 지경에 처해있는데 자기 일만 쌩 하고 가버릴 수가 있느냐며, 정말 매정하고 삭막한 부서라고 동기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동기의 생각에 대해선 각자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환경과 그간의 경험 따라서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신의 경험에 맞춰 다양하게 판단하실 것이라 생각된다. 동기랑 같은 부서는 아니더라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같은 조직 문화 교육을 받은 나는 동기의 생각이 와 닿지가 않았다.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이 곳에서는 후배가 선배의 짐을 대신 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고 같은 원리로 선배도 후배의 짐을 싸는 것도 이상했다. 본인의 일은 본인이 하는 것이 옳으며 불합리하게 본인의 업무를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금기시됐다. 가능하다면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야 했다. 더구나 동기가 교육받는 곳은 차로 두세 시간 걸리는 곳에서 받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히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내 생각에는 10분 정도면 퇴근이 좀 늦어지더라도 충분히 사무실로 돌아가 정리하기엔 시간이 충분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서원들이 대신 챙겨 주기엔 애매한 거리다. 그들도 일찍 집에 가고 싶은 건 매한가지니까. 오히려 역으로 동기가 선배였다면 오늘 교육인 후배의 짐을 챙겨줬을까?


예상외로 채팅방에는 동기의 입장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솔직히 놀라웠다. 이 친구들이 정말 동기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위로한답시고 남기는 메시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랑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러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채팅방에 다른 의견쯤은 하나 있어도 상관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보냈으면 안 됐던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런데 교육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옮길 수 있는 거 아냐? 그것 가지고 선배가 대신해주길 기대하는 건 좀 오버 아닐까?


그 뒤로 '10분이면 선배들도 좀 애매할 것 같다', '선배들도 금요일인데 일찍 가고 싶지 않을까', '그래도 자기 짐은 스스로 옮겨야지'라고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보낸 다음에 난 다른 동기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받았다.


헐 OO이 살짝 꼰대 기질이 보이는데? ㅋㅋ


잠깐만 내가 꼰대라고?! (미생, tvN, 커버사진 출처 동일)

마지막으로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너도 후배의 짐 옮겨주기 귀찮지 않을까"라고 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답변으로 받은 메시지에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멀리하고자 노력해왔던 '꼰대'라는 단어의 주인공이 되자 나는 시합 시작 10초 만에 내려찍기 한방으로 K.O를 당했던 초등학교 태권도 선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며 충격에 빠졌다. 입사 전 미생에서 본 꼰대 캐릭터 아저씨가 나의 미래라고?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사람이 나라고? 난생처음 받아본 단어가 주는 엄청난 위압감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원래 하려던 말을 지우고 기존의 입장을 어색하게 얼버무리는 답장을 보냈다. 다행히 동기들은 내 의견에 크게 게이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채팅방에 내가 남긴 메시지는 다른 동기들의 메시지가 채워지면서 스크롤 위로 올라갔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채팅방을 바라보다 퇴근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그때와 생각이 바뀌었냐면 난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후배인 내게 시켜도 될 일들을 스스로 하는 선배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굳이 내게 넘기는 선배를 모두 경험하면서 자기 일은 가능한 스스로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약 이 생각이 꼰대라면 글쎄. 난 평생 꼰대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당시 경험으로 터득한 교훈이 하나 있다면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더라도 별로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입밖에 꺼내는 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의견을 말해서 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숨겨왔던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는 만족감? 동기모임 내부 의견의 다양성 추구? 어떠한 것도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치부되는 것에 비해 소소한 이득이다.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굳이 소신을 내세워 위로 분위기를 깬 것은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소신 완장은 동료들과 일하는 회의실에서 필요하지 사모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이 일 이후부터 누가 물어보기 전에는 굳이 분위기를 깨는 발언은 하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철칙이 생겼다 (그래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못하겠다)


약간의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나를 꼰대라고 말한 동기도 너무 나간 것 같다. 내 생각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꼰대라고 칭하다니. 그냥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들은 다 꼰대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사실 이건 나도 무관하지 않다. 지금껏 직장 생활하면서 나와 다른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를 만나면 난 그분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저건 이미 옛날 시대의 사고야!', '아니 요즘 시대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라고 미리 단정하고 주저 없이 젊은이의 특권 중 하나인 꼰대라는 단어를 그들에게 낙인찍어 버리곤 했다.

꼰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의 몇 없는 특권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난 '나는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항상 옳다'라는 착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다닌 철부지와 같았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당시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100%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필요했던 일들과 지켜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혼자만 옳다고 자부하던 당시의 내가 오히려 꼰대이지 않았을까? 나를 '요즘 젊은것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주길 바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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