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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y 19. 2020

혐오와 거리두기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들을 보며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 따듯하게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멀찍이 꽃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을 찾아간다. 원래 같았으면 일찌감치 꽃놀이를 갔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각종 언론과 현실로 직시하게 된 재난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더 예민하고 불안해진 것 같다. 사망자 수, 확진자 수, 집단감염 등으로 난리가 나고 행사, 모임 등은 취소, 연기, 폐쇄되면서 충격과 공포가 증가되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암담한 상황이라서 그럴까. 함께 이겨낼 방법을 찾기보다는 특정 인물과 단체를 혐오하는 감정이 기침하듯 터져 나왔다.
 
혐오’ 嫌惡  [혀모]  명사  ‘싫어하고 미워함.’
 
혐오’는 기피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다.
 
확진자, 중국인, 유학생, 여행객, 신천지 교인, 특정 지역에 대해서 언급할 때 마치 ‘바퀴벌레’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한 반응이 쉽게 보였다.
 
‘재난 사회’라는 단어 속에 숨어서 공격성을 정당화하고 있던 건 아닐까?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한 중년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할 거 아니야!”
 
확산 피해를 막기 위해, 개인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착용이 바람직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존중, 자유의지, 피치 못할 상황에 대해 전혀 고려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청년들을 자신의 감정의 배설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었다. 외부에서 콜록하는 기침 한 번, 재채기 한 번을 해서 사람들의 눈초리와 따가운 시선을 느껴본 적, 중국인이 꺼림칙하여 자리를 피한 적, 여행객 소식을 접하고 손가락질해본 적 등 장소에 구애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다양한 사례로 떠들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동양인 혐오범죄다. ‘질병의 발원지가 중국’이라는 이유로 몇몇 동양인들이 무차별 폭행, 칼부림같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됐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난을 했지만 사실상 한국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국내에서 중국인,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해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지내는 외국인 친구를 두었기에 가까이에서 외국인이기에 차별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자극적인 이야기에 동조하고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을 단단히 지키고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
 
지금 어려운 이 상황도 결국 순간일 뿐일 것이다. 며칠 전 72일 만에 코로나 확진자가 ‘0명’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야기를 듣는데 그간 답답했던 마음이 놓여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감동보다 허무함이 짙게 남았다. 치열했던 지난날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이 각종 분노, 혐오의 감정들뿐이기 때문이다. 이 질병과 싸움이 지금 당장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일상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싸움이 끝나도 패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하던 사무실에 확진자의 접촉자가 방문한 적 있다. 소식을 듣게 되자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비난을 쏟아부었다.
 
“그러게 집에만 처박혀있지 나오긴 왜 나와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이렇게 이기적인 놈들 때문에 다 죽는 거지.”
 
사람들은 지금 당장 그 사람이 보이면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마땅히 욕먹어야 하는 사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에도 모두들 침묵 속에 그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탓하고 질책하는 것이 만연해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질병만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아니, 질병의 감염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정이 전염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다그침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
 
그리고 혐오는 되돌아온다.
 
혐오의 씨앗이 원래 만연해서 조그만 양분에도 금세 꽃 피웠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 기회로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자.
 
성 소수자, 이주민, 난민, 니트족, 은둔형 외톨이, 여성 등
 
물리적 거리두기 그리고 잠시 멈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지금 혐오와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거대한 세상의 분노가 개인에게 향하지 않도록, 우리의 이 순간이 반성과 후회로 남지 않도록, 침착함을 가지고 따듯한 마음으로 현재를 마주하자. 서로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가까이한다면 이 순간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린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본 작업은 (주)스튜디오 엠퍼씨의 코로나19 프리랜서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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