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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y 31. 2020

비겁한 선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아빠가 집을 나간 지 1년이 된 것 같다. 이젠 너무 당연해진 날들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가장 보고 싶었던 순간은 특별한 날들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처럼 사소한 찰나였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책가방을 메고서 현관문을 닫으면 2층에 사는 친구들도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오곤 했다. 그들은 곧바로 하얀색 승용차로 달려갔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던 아빠가 생각났다. 내 처지가 안타까웠던 건지 2층 아주머니는 꼭 의례상이라도 “태워줄까?”라는 말을 건넸다. 그 동정 어린 말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학교는 40분가량 산 하나를 타듯 높은 오르막길을 올라야만 마주할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길을 오를 때면, 차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힘겹게 오르는 내 신세가 초라해졌다. 언젠가 나도 아빠를 가져볼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아무런 대가 없이 가진 것이 나에게는 평생 가질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던 날 현관문을 열었더니 곰인형과 책가방이 놓여있었다. 누가 이렇게 좋은 것들을 현관문 앞에 버려두고 갔을지 궁금했다. 서둘러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이것 좀 봐.”

이내 엄마의 대답을 통해 아빠가 두고 간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선물을 두고 갔네!”

처음 받아보는 큰 선물에 깜짝 놀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후 금세 분노가 차올랐다. 얼굴 한 번도 제대로 비추지 않고 선물만 덩그러니 놓고 간 아빠가 괘씸했다.

‘아빠는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덜 사랑하나 봐.’

아빠가 보고 싶어요.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평범해지고 싶어요.

그런 말들을 꾹꾹 누르며 아빠를 기다렸지만, 대답이 고작 ‘미안해.’인 것 같아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선물들을 가득 안아 들고 옷장에 모두 넣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상처 받은 마음은 비싼 선물로 치유되지 않았다.

나의 동의 없이, 어른들의 결정으로 확정된 이혼. 이후 어릴 적부터 어른들은 나를 편견으로 바라보았다. 이혼하고 가난한 가정의 가엾은 아이. 부모님의 선택과 나를 나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세상은 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게 했다.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상처들을 받은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내가 꿈꾸는 가족을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소박한 가족의 대화와 정겨움을 느껴보고 싶다.

며칠 전 서울역을 지날 때 창밖에 아빠의 품에 안기는 한 여성을 보았다. 순간 아빠가 나를 보러 서울에 와준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며 눈물을 훔쳤다. 나도 모르게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었다.

그를 떠올리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비겁하게 선물 따위에 숨지 않고
나를 꽉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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