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Apr 21. 2021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진짜 공부를 하다.

나는 솔직히 철학이 왜 나에게 필요하고, 타인에게도 필요한지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본능적으로 철학이 나에게 필요하고 철학을 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살아가면서 개인의 철학이 오만할 때도 잘못된 믿음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 여기서 ‘잘못된’이라 판단한 것도 나의 오만이고 편견일 수 있겠지만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사유하고 대안을 생각하며 오류의 범위를 좁혀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게 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 즉, 우리가 함께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3년 전 나는 집에서 니체의 책을 몇 장 넘기다가 덮어버렸다. 니체의 철학은 심오하고 알수록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현실도 잘 살아가지 못하면서 추상적인 걸 배워서 더 우울해질 필요가 있을까? 지금 눈앞에 놓인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 시점에 현실과 관계없는 공부는 욕심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이나 잘 살아가자.’    

 

그렇게 책을 꽂아둔 채 지금까지도 그의 철학이 무엇인지 탐구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현실에 순응하며 현실과 나 자신에게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으며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은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자신을 병들게 하는 일이었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는 단순히 노동자 외의 인격체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살아갈수록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과거에는 주어진 것에 의문을 품지 않으며 살았다. 매일 학교에 가서 초·중·고를 졸업하는 것과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은 것과 어른이 되면 노동을 해야 하는 것 등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쩌다 태어난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이 모든 것을 그냥 당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과거를 다시 떠올려보면 그것은 온전한 순응이 아니었다. 나는 종종 학교가 가기 싫어서 엄마와 싸웠고 수업시간에는 대부분 잠을 잤다. 집이 가난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기면 왜 내가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노를 느꼈고 정도가 심하면 집에 있는 물건을 부쉈다. 이것은 비언어화된 언어였다. 부조리를 느끼는 진정한 나의 감정의 언어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구조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도록 세상이 설계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왜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세상을 그토록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할까? 왜 사회는 의문을 품는 자보다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좋아할까?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성격을 지닌 것 같다. 미래를 걱정하게 하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게 하고 현재에 의문을 품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장치로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돈을 얻고 안정을 얻는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왜 사람은 각자 나름의 불행과 고통이 항상 삶에서 동반되는 걸까?     


비단 이런 고민을 하도록 하는 문제가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믿지 않는다. 성차별, 정신적 가치, 사회적 가치 등 여러 가지가 얽혀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낀 이유,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탐구, 때때로 내가 불행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한 시점 같다.     


나는 아직 지식이 얕아서 경제학, 심리학, 철학, 과학 등 많은 학문의 체계가 철학과 명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다 철학의 성격을 지닌듯한데 이것을 구분해놓은 체계 자체도 이해하기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 개념들, 철학과 경제학이, 철학과 과학이, 또는 철학과 심리학이 각각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공통점은 무엇인지를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이 사회는 지금 나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각으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통해 비언어화된 나의 언어를 언어화하고 동시에 이 사회에 내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한 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공부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철학이 나에게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가난을 수치심으로 만드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