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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May 01. 2021

비정상으로 살래요

비정상을 만드는 사람들

(정상)가족, (정상)체중, (정상)외모, (정상)학벌 등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단어 앞에 '정상'이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생략되어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정상인인가?

엄연히 말하자면 나는 '비정상인'이다.

사회가 정의하는 정상인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조건이 거의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한부모 가정, 저소득, 과체중, 얼굴이 못생긴, 학벌이 낮은 여성 등의 꼬리가 영원히 따라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상성을 강요받을 때가 무수히 많았다. 여성으로서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은 외모 지적이었는데 신기했던 것은 그런 언어폭력을 내뱉는 당사자가 정작 그것이 폭력인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주 들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진짜 긁지 않은 복권이다. 10kg만 빼 봐."

나름 내 외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뱉은 이야기였다. 다만 그 말이 지금의 몸매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뮤지컬과 입시 준비를 할 때 연기학원 선생님은 나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핑계로 말했다.
"살 못 빼면 대학교 못 간다. 평생 그 몸매로는 아줌마 역할밖에 못 해."

난 당시 키 164cm에 60kg인 18살 여학생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굉장히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이라 생각했고 외모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주눅이 들었다. 심각한 것은 어느 순간 선생님 말에 세뇌되어 자기혐오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줌마 역할밖에 못 하는구나.’

어떤 누구나 매일같이 저주에 가까운 말을 듣게 된다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이다. 실제로 난 집에 가서 매일 울었다.

이것은 내가 다이어트하고 싶지 않아서, 의지가 약해서 하는 투정이 아니다. 대중 앞에 서는 직군이 날씬해야 한다는 잘못된 사회적 기준이 존재하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중학교 때 친구의 집에 가던 날, 친구는 현관문 앞에서 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종종 자유롭게 들락거리던 집을 못 들어가게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너랑 다니면 질 나빠진다고 같이 다니지 말랬어.”

며칠 전 친구의 엄마와 나의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문에 부모가 온전하지 않은 아이, 집이 가난한 아이와 어울리면 질이 나빠진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이후로 그것은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었을뿐더러 그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당한 차별과 폭력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지금까지 자신을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에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다. 정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바꿔나가야 한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스스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타인도 그렇게 존중하려 노력하고 싶다.

누군가 내 삶에서 또다시 정상성을 요구한다면 나는 물음을 던지며 대응할 것이다. 그는 내가 정상인 기준에 속해야 하는 이유와 정상인 기준에 대한 견해를 나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끝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그 사람의 몫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거니까.

우리는 그저 개개인이 모두 다른 상황과 환경에 놓여 살아가고 있다. 그런 존재를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당사자야말로 비정상이 아닐까?

당신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아니면 두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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