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이라고 하지만 길어봐야 7000년 전 신석기 시대까지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였다. 우주의 역사는 138억 년이다. 이 기간을 1년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으로부터 3시간 전에 인류는 직립보행을 할 수 있었고 30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렵채집을 하고 있었다.
수렵채집 생활은 말 그대로 야생 동식물을 사냥하거나 채집하여 생존을 유지하는 생활이다. 이후 문명이 발달하면서 분업화가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타인에게 의존하게 됐다. 자신의 능력이나 재산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화폐를 얻는다. 그리고 그 화폐를 매개로 우리는 삶을 유지해 나간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일정 기간 동안 지속하는 것을 우리는 ‘직업’이라고 부른다. 어떤 직업이든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남에게 필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로를 정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최근 몇십 년간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다. 그런가 하면 의사, 수학자, 물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등 몇백 년간 사라지지 않은 직업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가 변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것을 배우며 살아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미래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답을 찾는 것은 중요도만큼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폴더 폰을 사용했고 카카오톡이 아닌 버디버디라는 프로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100년 전에는 교통수단으로서 주로 말을 이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미래에 바다 속을 여행 할 교통수단으로 잠수함이 아니라 고래를 상상하고 예측하였다. 이는 자동차가 너무 잘 고장나서 말을 타고다닌 당시 사람들에게 타당한 예측이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미래 사회에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것이 좋을까?’ 이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과거나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을 먼저 학습하는 것이다. 인간이 읽고 쓰고 말하는 활동은 과거나 현재에나 그리고 미래에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또한 인간은 미래에도 지금처럼 예술(음악, 미술, 체육)을 할 것이다. 사실 현재 로봇이 하기 어려워 하는 일이기도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많은 지식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철학, 역사 등에 토대를 둘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삶의 토대가 되는 교과목을 배워놔야 한다. 실제로 우리 삶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n차) 산업혁명은 기초과학 덕분에 가능했다.
사실 위 학문들을 배운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삶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먼 미래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좋은 삶'이라는 사회적 의미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같다면, 과학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가 더 인생의 복잡한 문제를 잘 판단하고 해결할까?’라는 질문에는 단언컨대 과학을 배운 사람이 더 유리할 것이다.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