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국가, 사회, 제도, 법, 경제 시스템 같은 인류 문명의 산물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형성한다. 문명이 없는 자연 상태를 상상할 기회가 드물고, 인간의 활동과 직접 관련 없는 대상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원자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별다른 의미 없이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인간, 동물, 식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책상과 컴퓨터를 구성하는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존재가 확인되고 그 구조와 원리가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반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원자 수준에서 작동하는 원리들이 드러났는데, 이는 인간의 직관과 상당히 달랐다. 이 직관이 무엇이고 왜 맞지 않는지 설명하고 싶지만, 긴 설명이 필요하다. 더불어 필자의 학식으로는 부족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수업 중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했을 때 들었던 교수님의 답변을 인용하고자 한다. "우주가 우리의 직관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대로 이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 여기서 우주란 서로 상로작용하는 것들의 집합이다.
시공간에 관한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칸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선험적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선험적이란 경험이나 학습 없이도 알 수 있다는 뜻인데, 우리의 경험상 시공간이 선험적 지식이라는 것은 꽤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이 세계관을 뒤집었고, 이것이 바로 상대성 이론이다. 이 또한 필자의 학식이 부족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핵심은 이것이다—자연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은 인간적인 가치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 속에서 인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은 대개 직접적인 경험에 의존한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지만, 이 경험들의 규모—만나는 사람들의 특성과 수, 교육 환경, 경험하는 문화의 종류 등—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는 간접 경험(영화, 책 등)으로 극복되곤 한다. 과학을 통해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소개하겠다.
어떤 현상이 자연스럽다 또는 부자연스럽다는 판단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다른 이에게는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동성애를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제한된 경험 범위에서만 생각하면 동성애를 부자연스럽게 여기기 쉽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현상이며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험의 범위를 다른 동물들로 확장하면 동성애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동물들의 행위를 관찰하여 우리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은 '본다'는 개념 자체를 확장시킨다. 우리가 물질을 인지하는 것은 물질과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흔히 사용되는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물체에서 반사된 전자기파 중 가시광선을 인식했다는 뜻이다. 전자기파란 전기장과 자기장의 진동이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것인데 진동수(1초에 진동하는 횟수)에 따라 우리가 볼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진다. 가시광선이 특별한 이유는 진짜 특별해서라기보다 인간이 볼수 있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리적 관점에선 핸드폰이서 나오는 전파나 우리가 보는 색깔이나 단순히 진동수가 다를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전자기파가 존재하지만, 그중 가시광선만이 눈의 로돕신 분자와 반응하여 전기신호로 전달된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일부만 본다.
인간 중심적 관점을 벗어나 가시광선이 아닌 다른 전자기파 신호를 다른 도구로 감지하여 세상을 그려내면, 그것도 본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예시가 X-ray, MRI 등이다. 앞선 과학적 사실을 고찰해 보면, 다른 생물들은 우리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파장대의 전자기파를 감지하거나, 같은 진동수 대역을 인지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지할 수 있다. 실제로 뱀이 보는 세상, 올빼미가 보는 세상,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제각기 다르다.
'본다'는 개념은 점점 더 확장되는데 우리가 원자나 DNA를 본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일상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원자나 DNA에서 반사되는 가시광선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전자를 DNA에 쏘면서 그 흔적을 본다. 암흑물질과 블랙홀의 관측도 비슷한데 암흑물질이나 블랙홀 자체를 직접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결국 다른 방법으로 대상을 인지하는 것일 뿐이다.
과학을 배운다고 삶이 개선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을 배우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영화 가타카에서 우주탐사를 꿈꾸던 주인공은 사회의 편견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꿈을 이룬다. 지구를 떠나면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할 수 없는 곳이지만 떠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몸속의 모든 원소도 우주의 일부라고들 한다. 어쩌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은 이처럼 우리의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