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관하여...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삶의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이 불가능성에서 오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꽤 좁았던 것 같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지금도 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 크지는 않다.
당시 나는 카톡 답장을 4~5시간, 심지어 하루 이상 걸린 후에야 보내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알바를 너무 많이 해서 시간이 부족하다며 동기 모임에는 잘 나오지 않으면서도 동성 동기들과는 꽤 자주 노는 친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운 좋게 지난 대학 생활을 여유롭게 성찰할 시간을 가지면서, 내 감정에 대해서 더 깊고 솔직하게 바라보았고 어떤 이유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돌아보게 됐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성격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정체성, 가치관, 행동양식을 형성한다. 이것들 중 일부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성격과 경험에서 비롯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문제나 현상을 판단하게 된다. 예를 들면 "관심 있는 사람한테는 답장이 빠르다", "알바를 왜 저렇게 많이 하지?", "알바할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게 낫지 않나?"와 같은 판단들이 그렇다. 심지어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이건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그 타인을 비방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카톡 메시지를 대하는 심리와 환경이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알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할 때, 그 사람의 특성보다는 통념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러니 될 리가 없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강한 충격을 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7~8년을 알고 지낸 친구들보다 단지 몇 달 함께 생활한 사람이 나의 성향에 대해 훨씬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한 일이다. 회의감이 들었다. 오랜 기간 피상적으로 아는 것보다 짧은 기간이라도 깊게 알아가는게 내 인생에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의 몇 배는 앞으로 더 살아갈 텐데, 그 기간을 누구와 함께 보낼지 선택하는 건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타인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아왔는지 반성하게 됐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 타인과 나의 생각이 충돌할 때, 비난보다는 질문을 먼저 꺼내 놓았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 생각의 종착지에 도달했는지 그 '궤적'을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한 감상이 다를 때도 '그냥 다르구나'에서 끝내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르게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질문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는 통찰력도 생겼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다. 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와 용납은 다르니까. 다만 이해한 후 용납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이해 없이 판단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그렇다.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해본 결과 그것이 무척 어렵다고 느꼈다. 나 역시 이것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럼에도 이 욕망은 떨쳐지지 않는다. 사실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나를 좀 더 잘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이 욕망을 거세할 수 없어서 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