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자연현상을 탐구한다. 그 중에서 물리학은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특성에 집중한다. 물리학에서 관심 있는 것은 특정 대상의 세부 사항이 아니라 수많은 대상이 공유하는 ‘공통의 원리’이다.
비유하자면 물리학자는 보드게임 회사마다 다르게 제작되는 체스 기물의 생김새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모든 체스판에 적용되는 게임 규칙에 관심을 둔다. 물리 법칙이 보편성을 띠는 이유는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은 애초에 '모든 물질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편성을 갖게 된다.
물리학은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때 보다 근본적인 요인들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자연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멈춰 있던 공이 빗면을 따라 굴러 내려가는 현상을 설명하는 세 가지 관점을 비교해 보자.
• 설명 1: "공이 둥글기 때문에 굴러간다." • 설명 2: "빗면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굴러간다." • 설명 3: "공에 작용하는 힘의 총합이 0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3가지 설명은 동일한 자연현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잘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 3가지 설명 중 어떤 설명이 물리학이 추구하는 설명에 가까운가 하면 세 번째로 제시한 설명이 가장 물리학적인 설명에 가깝다.
물체의 모양이 정육면체이거나 빗면이 기울어져 있어도, 물체에 작용하는 알짜힘이 0이 아니라면 물체는 굴러갈 수 있고 운동상태는 변한다. 반면, 물체의 모양이나 땅의 경사가 어떻게 바뀌든 물체에 작용하는 최종적인 힘이 0이라면 운동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물체의 운동상태를 변화시키는 근본 요인은 모양이나 경사면이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물리학적 사고방식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분야가 사회물리학이다. 사회물리학은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모델과 사고방식을 적용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이를 통해 인종 분리 현상, 여론의 형성, 교통체증, 주가 변동 등을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물리학은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그 현상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나 원인을 찾으려 한다. 따라서 설명하려는 상황의 고유한 특성에 초점 맞추기보다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인 특성에 초점을 둔다.
1970년대 초반 뉴욕과 시카고 같은 미국 도시에서는 인종 간 분리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백인은 부유한 교외에 거주했고, 흑인은 도심 지역에 고립된 채 빈곤에 시달렸다. 고용, 승진, 급여에서 인종차별이 만연했으며, 부동산 업계는 흑인이 백인 거주지로 이사하는 것을 막았다. 그 결과 인종 분리는 심화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인종주의로 해석했다. 소득 격차 같은 경제적 요인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다. 또한 1950~60년대 고속도로 건설이 백인 중산층을 도심 외곽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에 이 역시 인종 분리의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인종 분리 현상이 여러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토머스 셸링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셸링은 체스판의 네모 칸(거주지) 위에 검은색 동전(흑인)과 흰색 동전(백인)을 놓고 동전의 이동에 관한 몇 가지 규칙을 설정한 뒤 동전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셸링은 체스판 위에 검은색과 흰색 동전을 놓고 다음과 같은 이동 규칙을 설정했다.
• 실험 1 (강한 배척): "내 주변에 다른 인종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사한다." → 인종 분리가 매우 빠르고 극명하게 일어났다. • 실험 2 (약한 선호): "나는 다른 인종과 섞여 살아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속한 인종이 전체의 30% 미만(소수)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이 실험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적극적인 인종차별 의사가 없는 '실험 2'의 조건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강력한 인종 분리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종 분리의 원인을 인종차별로 생각한다. 그러나 위 실험은 인종차별이 없어도 인종 분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소수가 되고 싶지 않다'는 성향만 존재한다면, 인종 분리는 문화권과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인종을 혐오하는 것과 자신이 소수 인종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특성 중 어떤 것이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특성에 가까울까? 만약 자신이 소수 인종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특성이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에 가깝다면 여타 경제적, 제도적 조건은 인종 분리를 가속화 할 뿐이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님을 의미한다.
셸링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인간의 보편적 심리 기제라는 단순한 모델로 환원하여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물리학적 사고방식의 핵심은 복잡해 보이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요인들만 남기고 나머지를 과감히 깎아내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이를 우스갯소리로 하는 "일단 소가 둥글다고 해보자(Assume a spherical cow)"라고 하기도 한다.
무엇이 중요한 요인인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정확히 해낸다면 아무리 복잡한 세상도 명확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물리학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조절하여 보편적 진리를 찾아내는 '태도'를 배우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