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깡촌 고교 교사 열전

by 최은규

2010년 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창문 밖으로 널찍한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전국적으로 보아도 가장 농촌스러운 학교일 것이다. 그곳에는 기이하고도 독특한 선생님들이 참 많았다.


수업 시간에 EBS 틀어 놓고 도망가던 A 국어 선생님

이 선생님을 수업시간에 만나기는 꽤 힘들었다. 보통 EBS 강의를 틀어놓고 어딘가를 다녀오셨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본인이 직접 수업하는 날이면 무언가를 가르치기는커녕 학생들을 시켜 문제집의 해답을 칠판에 판서시켜놓고, 학생들과 농담이나 주고받는 게 다였다. 내가 볼 때 도덕적 해이가 가장 심했던 사람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수업시간에 전교조 조끼를 걸쳐 입고 학생들 면전에서 전자담배를 뻐끔거리며 정치인을 비판하는 취미가 있었다.


이 분은 본인이 가르치는 게 없기 때문에, 사설 문제집을 베껴 내신 시험을 출제하는 일이 잦았고, 내신을 통해 입시를 준비하던 성실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곤 했다.



수면고문기술자 B 국어 선생님

이 분은 무언가를 가르쳐 주시지는 않아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분이었다. 교과서에 적힌 텍스트를 쭉 읽고, 문제집의 지문을 쭉 읽고, 해답지를 쭉 읽는 게 수업의 전부였다. 사실상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이었다. 텐션도 낮아서 듣다 보면 미친듯한 졸음이 쏟아지는 게 특징인데, 나무 막대기로 졸고 있는 학생의 머리를 딱딱 때리고 다니면서 불경 외듯 교과서를 줄줄이 읊으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선생님이 우리 선배 한 명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낮에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엎드려 잠만 자던 문제아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매일 새벽시간에 자습을 해서 고려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분의 수업을 듣다 보면 그 선배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무의미한 그 수업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EBS 틀어놓고 도망가는 A 선생님이 백 배는 더 나았다. 훌륭한 EBS 강의를 보거나 내 공부를 할 수라도 있었으니까.



네가 집에 가서 직접 알아보라던 C 수학 선생님

이 선생님은 성격은 좀 괴팍했지만 나름 수업도 열심히 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이 있던 분이었다. 하지만 문제풀이를 잘 못하셨기 때문에 학생들이 문제를 들고 가면 해답지부터 가져오라고 하셨다. 장난기 많던 학생들은 해답지를 잃어버렸다며 어려운 문제를 들고 가서는 그 선생님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즐기곤 했다. 나도 한 번은 수업시간에 간단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네가 집에 가서 직접 알아보라'는 핀잔을 듣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기숙사생이라 학교가 끝나도 집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능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던 D 영어 선생님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말은 죽어도 못 했던 C 수학 선생님과는 다르게, 이 선생님은 매 수업시간마다 수능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절절히 호소하던 분이었다. 우리가 믿고 기대야 할 선생님이 어려움을 호소하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알고 보니 이 분은 영어 전공도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선생님이 되셨다고 했는데, 이분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교사 실력에 대해 민원을 넣지 않는 시골로 내려오신 것 같았다.



꽐라가 된 E 사회 선생님

이 분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면 용서를 잘해주는 인간미 있는 선생님이라 내가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게 문제였다.


우리 학교는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사감을 맡았다. 기숙사생들이 집에 가는 토요일 아침 점호시간, 학생들은 복도에 점호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감을 맡은 E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사감실에 몰려간 학생들은 문 위로 난 유리창을 통해 사감선생님이 방에 쓰러져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불러도 깨어나지 않으셨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저분이 죽은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기절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통기타를 들고 와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문을 두드리고, 급기야 2층 난간에 매달려 사감실의 창문을 열어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학생들이 문을 열었지만 사감 선생님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고, 학생들이 직접 기숙사 방송을 송출했다.

"사감실에서 알립니다. 사감 선생님이 꽐라가 되어 쓰러진 관계로 점호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나도 한 번은 밤 11시쯤에 기숙사 복도에서 친구들과 벌을 서다가, 우리를 벌 세운 E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뻗는 바람에 복도에서 잠이 든 기억이 있다. 새벽 6시에 눈을 떠보니 기숙사 복도 천장이 보이던 황당함을 잊을 수가 없다.



회고

지금 돌이켜 보건대, 아마 대도시 학군에서 선생님들이 저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학부모들의 민원 폭탄에 시달리고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의 씩씩한 학생들은 구태여 선생님들의 부족한 모습을 엄마아빠에게 이르거나, 본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나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다른 고등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나는 EBS 강의를 통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EBS 강사분들의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보면서 막연히 사교육계의 일타강사를 섭외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보던 한 EBS 수학 강사님이, 마지막 강의에서 본인이 속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저런 열정과 실력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든 본인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계셨던 그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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