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껴간 운명은 말이 없다

by 최은규
화면 기록 2025-09-13 오후 6.04.18.gif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0vkV5AduqOwc

시간 민감도와 나비효과

위 그림은 초기에 극히 작은 각도 차이만을 가지고 시작된 진자운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되는 나비효과를 시각화한다.


우리는 살면서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들을 한다. TV를 돌리다가 본 스포츠 경기가 멋있어 운동선수가 된다거나, 우연히 어깨너머로 들은 정보를 통해 큰 결정을 하게 되는 것들 말이다. 나만 해도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다른 친구와 해양대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배를 타게 됐다. 내가 그때 매점에 빵을 사 먹으러 갔다면 내 삶의 경로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빗겨나간 운명은 말이 없다

당신이 만약 당장 총에 맞는다면, 지금까지 '잘 된 일'이라 여겼던 모든 일들은 결론적으로 당신이 총에 맞는 그 사건을 향해 정렬되었던 것이 된다. 원하던 학교에 가고, 꿈꾸던 취업에 성공하고, 청약에 당첨된 그 모든 '잘 된 일'들이 사실은 총에 맞는다는 '안 된 일'이 일어난 조건일 뿐이게 되는 것이다.


즉, 인생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이전의 모든 사건들은 잘 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그 반대가 된다.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최근에 놓은 말이 기존 말의 색깔을 뒤집는 오델로 게임처럼 그 어떤 일도 가치판단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Othello_Spielbrett.jpg 오델로 게임. 상대방 말을 감싸면 내 말로 뒤집을 수 있다. https://commons.wikimedia.org


이런 사고방식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재수 없는 일들이 알고 보면 내가 어느 날 총에 맞지 않도록 삶의 경로를 비틀어준 고마운 일들이 되기 때문이다. 꼭 총에 맞는 일 뿐만 아니라, 복구 불가능한 비극이 내 삶에 일어난 상태가 아니라면 내 삶에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일 같은 건 없다는 의미가 된다.



후회라는 생존편향

후회는 산 자만이 할 수 있다. 후회는 생존의 증거이며, 비극으로 향하는 운명이 전부 비껴갔다는 방증이다. 비껴간 운명은 말이 없다. 따라서 후회는 일종의 생존편향이다.

img1.daumcdn.jpg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비행기들이 총을 맞은 부분. 뒤집어 생각하면, 총에 맞아도 추락하지 않는 부위를 뜻한다(생존 편향).


후회라는 건 생환한 비행기의 피탄 부위를 보고는 그곳에 철판을 덧댔어야 했다는 생각과 같다. 프로펠러가 아니라 그곳에 총을 맞은 걸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당신이 불행이라 여기는 과거의 사건들이, 감사는 못 하더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은 아니었으며, 앞으로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신이 죽는 날까지도 그 일에 대한 가치판단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지각해야 한다.


후회도 버려야 하지만, '잘 된 일'이라는 개념도 버려야 한다. 가치판단은 기쁨의 재료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불행이라는 그림자를 남긴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가 좋은 일이라고 어떤 일을 못 박아버리면 다른 일들은 썩 별로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일들은 후행하는 일들의 전제조건이 된다. 따라서 기쁜 일조차 '내 기분을 잠시 좋게 해 줬던 일' 그 이상으로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남에게 일어난 행운을 질투하거나, 나에게 일어난 불행을 원망할 이유도 없어진다. 가진 것들에 집착하거나 불운을 막으려 지나치게 애쓸 필요도 없어진다. 그저 구름처럼 우연히 피어나 나에게 불어오는 풍경 같은 일들을 유쾌함과 해학으로 후 하고 불어내는 것, 그 정도면 삶을 대하는 태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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