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방정식이 아닌데

by 최은규

결과 공식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서울대 출신 판사들보다 경찰대 출신 판사들이 평균적으로 일을 더 잘했다고 한다. 경찰대 출신 판사들은 현업을 뛰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해서 사법고시를 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더 똑똑했다는 것이다. 아래 간단한 공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재능 x 시간 = 성적


경찰대 출신들은 투입 시간이 적기 때문에 같은 판사라면 평균적으로 머리가 더 좋았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물론 문형배 님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내가 뭐라고 그분들을 똑똑하네 마네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재능이 없으면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시간 총량의 법칙

스크린샷 2025-09-06 오후 9.40.45.png 출처: KBS 다큐 <인재전쟁>


최근에 핫했던 KBS의 다큐멘터리 <인재전쟁 - 의대에 미친 한국>에는 CCTV와 관제시스템으로 아이들의 공부량을 감시하는 자습실이 나온다. 뭐든 최적화에 진심인 한국인들이 자녀들의 인생까지 최적화하는 모습이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독서실에서 하루 할당량을 채운 후 남은 시간을 자유롭고 즐겁게 보낼 것이다(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하지만 또 일부 아이들은 학대에 가까울 만큼 공부를 강요받으며 학창 시절 대부분을 문제 풀이 연습을 하며 보낼 것이다.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한정돼 있다. 문제 풀이 연습에 쏟는 시간은 친구랑 놀아도 보고, 다퉈도 보고, 사과도 해보고, 화해도 해보고, 자존심도 꺾여보고, 타협도 해보고, 실패해 보고, 털고 일어나고, 열등감도 느껴보고, 이성과 어울려보고, 모임도 참여해 보고, 말실수도 해보고, 거짓말을 하다가 걸려도 보고, 게임에서 사기도 당해보고, 노래방도 가보고, 장기자랑도 나가보고, 악기도 배워 보고, 뉴스도 보고, 정치에 관심도 가져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소중한 시간들을 끌어온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 투자의 불균형 문제가 인생을 하나의 풀어내야 할 수학 문제처럼 대할 때 나타난다고 본다.



인생 방정식

서두의 공식을 약간 확장해 보자.

재능 x 효율(방법) x 운 x 시간(노력) = 결과


이제 의지의 한국인답게 이 공식을 방정식으로 취급하자. 방정식은 답을 정해놓고 미지수를 풀어야 하는 등식이다. 정해 놓을 답은 당당히 자녀의 의대 진학이다.

재능 x 효율 x 운 x 시간 = [의대]


재능은...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 보통의 재능이다.

[보통의 재능] x 효율 x 운 x 시간 = [의대]


효율은 사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은 학업 분위기가 좋고 일진이 적은 학군지로 이사를 가고, 시험 전에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

[보통의 재능] x [사교육] x [학군+100일 기도] x 시간 = [의대]


이제 시간이라는 변수만이 남았다.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아마 유치원부터 의대 입시반을 들어가 유년기와 학창 시절 전부를 문제 풀이 연습을 하는데 써야 할 것이다. 시간 총량의 법칙에 의해, 뭘 해도 새롭고 즐거운 예쁜 나이에 추억을 빚고 사회성을 기를 시간은 줄어든다. 젠지 세대의 사회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입시, 취업, 결혼, 육아를 방정식 풀듯이 이어나가다 보면, 총량의 법칙에 따라 다른 한 편에 희생되는 것들을 간과하게 된다. 그런 삶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뤄야만 하는 human doing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human being이라는 말이 있다. 삶을 정해진 결과에 끼워 맞춰야 할 방정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우주가 무한히 그려내는 현상들을 감상하러 온 여행으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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