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이 이리도 힘겨운 이유

by 최은규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다양성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폭력적인데 회사에서는 사람 좋다고 소문난 이들이 있다. 회사에서 성품이 좋다는 사람도 회사를 옮기고 나서는 평판이 나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도 직급이 바뀌고 성격이 돌변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살갑게 대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매정하기도 하다. 한 술 더 떠서, 잘 지내던 한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한다. 그렇다, 한 사람의 인간조차 맥락을 쏙 빼놓고는 좋고 나쁨을 규정할 수 없다. 한 명의 인간조차 이렇게 복잡 미묘한 마당에 수도 없이 많은 인간이 얽혀서 살아가는 이 사회는 얼마나 다양하고 불확실할까?


우리는 세상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지식만으로도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진화해 왔는데, 어느 정도는 현상을 단순화하고,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로는 세상의 복잡함을 인지하면서도 판단은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러한 단순화 기질은 불행의 기저가 된다. 누구든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데, 모두가 SNS에 하이라이트만을 자랑하기 바쁘다. 심지어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숨쉬듯 조롱한다. 이런 편향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접할수록 타인의 삶은 바람직한 삶, 나의 삶은 부족한 삶이라는 단순화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다양성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별 문제 없는 본인의 인생을 비관하는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표준적인 삶'에 대한 환상

나도 한때는 무의식 속에 내 삶은 어떠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어떠해야 하고, 진로는 꼭 이래야만 하며, 도덕적인 행동이라 함은 무릇 이래야 한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삶은 내 바램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달성되지 못한 페르소나를 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하던 표준적인 삶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환상이며 종교적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를 보면 인생이 재미없다는 수많은 글을 목격할 수 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이런 글을 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외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표준적인 삶'에 가까워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에 취직해 좋은 커리어를 쌓고, 비슷한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서 집과 자동차가 있는, 한국인이라면 무릇 꿈꾸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 잃어버리고 무기력증이 와버린 모습이었다. 애초에 표준적인 삶이라는 것은 허상이며, 오히려 그런 삶에 근접하려 할수록 개개인의 행복과는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내면에서 공명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의 취향이 아닌 엉뚱한 삶을 살게 된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렸던 나는 내 삶에 찾아오는 불행을 원망했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지,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수많은 간접경험을 접할수록, 문제라는 것은 정말 랜덤하게,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막무가내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자도, 유명인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어떤 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불확실성과 문제를 회피하려는 목적의식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가 바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표준 품삶'이고, 나도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개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든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표준 품삶'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해결하려다 생긴 또 다른 문제일 뿐이다. 왜 이런 오류를 범하는 걸까? 그것은 타인의 자기 자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 이면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인생이라는 현상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거의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다. 내게 찾아오는 문제들도 그렇다

자영업자는 회사원이 부럽고, 회사원은 자영업자가 부럽다. 사장은 직원이, 직원은 사장이 부럽다. 각자 장점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이 튀도록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사람 누구에게든 반대로 '너는 참 편하게 산다'라고 쿡 찔러보자. 아마 발끈하면서 본인이 겪는 수 많은 고충을 줄줄이 읊을 것이다. 세상에 장점만을 가진 무언가는 정말 드물다. 일이 편하면 커리어가 꼬이고, 연봉을 높이면 책임이 커지고, 전문직이 되면 일이 고되고, 유명세를 얻으면 평온함을 내줘야 한다. 대부분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내게 다가오는 삶의 문제는 늘 교훈과 경험을 남기며, 이따금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 각자의 성향과 취향이 있을 뿐이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과거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다가오는 문제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열등감도, 부러움도, 시기와 질투도 사라진다. 이해가 안 돼 스트레스받던 그 모든 것들이 나름은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풍경으로 변한다. 어떤 목표에 매몰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xy문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세상은 풍부한 다양성 덕분에 다채롭고 흥미롭다. 색다른 여행지와 카페는 좋아하면서 본인의 인생은 회색빛 같기를 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나의 인생과 세상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다양성의 연주를 즐기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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