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영에서 얻은 깨달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
와이프를 만난 이후로 올리브영이라는 화장품 가게를 자주 가게 되었다. 분명 저번주에 틴트를 샀던 것 같은데, 그새 다 썼다며 나를 끌고 가는 식이다. 화장품 가게에 들어서면 똑같이 생긴 한 여성의 얼굴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놀랍게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마 인간에게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공통적인 미감이 있는 것 같다.
문득 인류가 축적해 온 지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성인과 철학자, 각자의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뻔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 너무나 식상하고 목사님 같은 소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품이 나올 테지만 조금 나열해 보겠다.
- 가진 것에 감사하라
- 겸손하라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 누구나 실수를 한다
-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라
- 꾸준함이 중요하다
- 사람을 한 가지 잣대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다
-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다
-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아라
- 말을 줄이고 경청하라
-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이다
- 직접 해봐야 실력이 는다
- 에고는 적이다
이런 말들은 훌륭한 책 어느 것이든 펼쳐보아도 지겹도록 반복하여 등장한다.
반면에 악취가 나고 못생긴 말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번잡하게 발산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 형식은 대동소이한데, 아래 예시처럼 극단성을 띄고 있고 포용력이 부족한 이분법적 형식을 띠고 있다.
- A가 최고다
- B는 무조건 나쁘다
- C를 해야 성공한 인생이다
- D 아파트에 살면 거지다
- E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
- F 민족을 말살시켜야 한다
- G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
이런 말들은 인터넷 기사 댓글란처럼 한심한 사람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장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못생긴 말들이 주류인 것처럼 보인다. 왜일까? 얼굴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면서.
아름다운 진리의 말들은 셀 수 없이 증명되고 살아남아 왔다. 그래서 자주 보게 되는 만큼 식상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의 주의를 끄는 것은 악취가 나는 자극적인 명제들이다. 너무나 간단명료한 이 명제들은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지러움에 즉효 멀미약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뭔가 깨달은 것 같고 날카롭게 사고한다는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순리를 따르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회를 구성한다. 다만 이들이 겸손하고 자아감을 잘 조절하는 탓에 우리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로 훌륭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 이름을 모른다.
한 연구는 외국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74%가 단 1%의 유저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다. 알고 보면 못생긴 신념에 잡아먹힌 자아비대위원장들이 요란법석을 떨 뿐, 세상은 멀쩡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종의 편향인 셈이다. 아름다운 말들은 살아남아 계속 전해질 것이다. 심지어 못생긴 말들까지 포용하며 사회를 지속시킬 것이다. 인류가 지금껏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