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의 음높이를 알고 있어서 노래방에 가면 내 음역대에 맞게 음정을 낮춰 부른다. 한때는 나도 고음을 멋있게 내고 싶어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잘 안 됐고, 지금은 타협을 봤다. 다행히 노래에는 고음뿐 아니라 음색이나 리듬, 박자도 중요하기 때문에 즐거운 노래방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
나는 살면서 노래방에서 음정을 낮춘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을 딱 한 명 봤다.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본인 음역대에 맞지 않는 노래를 닭 잡는 소리를 내며 부르는 친구였다. 노래에 맞춰 본인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노래를 내게 맞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음정을 낮추는 사람들은 모두 노래를 듣기 편하게 잘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듣기 좋은 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난해하거나 고급 어휘가 쓰인 책을 읽으면 막연히 글쓴이가 똑똑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어려워 보이는 글이 멋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생 때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전기 등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려운 내용이라면 말도 어려워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이다. 나는 이것을 언어의 음정이라고 부른다.
노래의 음정은 부르는 사람에게 한계가 있고 듣는 사람에게는 없다. 언어의 음정은 이와 반대로, 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어려운 말을 내뱉을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노래는 나의 음역대를 미리 알 수 있어 조절하기 쉽지만, 언어는 듣는 사람의 음역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맞추기 어렵다.
나는 노래방에서 음을 낮추듯이, 언어의 음정도 나의 분수와 상황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며 살기로 했다. 세상에는 형이상학이나 양자역학처럼 난해한 언어로로 헤비메탈을 하는 분야가 있다. 하지만 내가 들을 수도 없는 음정이 오가는 세상을 흉내 내는 일은 목을 찢으며 괴음을 질러대는 노래방 빌런과 다를 게 없다.
우선 잘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쓰지 않도록 조심한다. 말하는 사람도 모르는 의도를 상대방이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어려운 단어와 쉬운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을 때, 같은 뜻이라면 쉬운 단어를 쓴다. 할 수 있으면 예시나 비유를 풍부하게 쓰려고 한다. 어려운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노래로 치면 고음을 듣기 좋게 내는 가성인 셈이다.
저음이라고 마냥 좋은 게 아닌 것처럼 쉬운 말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약간 부정확하더라도 쉬운 표현이 있다면 그걸 쓸지, 전문적이지만 더 적확한 표현을 쓸지 상황에 따라 잘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외하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해야 할 때도 있다. 전문가로서 클라이언트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전문용어를 살짝 섞을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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