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전략 전략

by 최은규

개발자로 취업 준비를 할 때, 같은 날에 두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전에 면접을 보고 얼마 안 있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합격 전화가 왔다. 나는 오후에 다른 회사 면접이 또 있어서 그 이후에 연락을 드려도 될지 양해를 구했고, 이틑날까지 답을 달라고 하셨다.


오후에 다음 회사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난 후, 나는 오전에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고 입사 제안을 받았다고 말씀드리고, 언제까지 합격 여부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면접관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을 시켜주셨는데, 나는 이틑날까지 결정을 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나는 고민 끝에 두 번째 면접을 본 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첫 번째 면접을 본 회사에 전화해서 내 결정을 말씀드렸다. 면접관님은 아쉬워하시면서 이유를 물어보셨고, 내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인연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 약간 곤란한(?) 상황에서 내가 사용한 전략은, 수를 내다보거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무전략'이었다.



MZ 세대의 회피 전략

회사를 다니면서 채용 과정을 지켜보니 MZ 세대의 노쇼와 잠수가 꽤 많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력서에 본인의 모든 신상 정보를 제출해 놓고는, 약속한 면접이나 출근일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회사의 채용 계획을 망가뜨리는 영업 방해고, 다른 지원자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개인 브랜딩 시대에 자기 얼굴에 직접 먹칠을 하다니.


면접이나 입사를 취소할 사유로 전화를 하는 게 껄끄럽기는 하다. 혹시나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지원자 주제에 어디 건방지게 저울질이냐는 막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사실 그럴 일은 없지만).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조직이라면 그곳을 다녀야 할 이유가 더욱 없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솔직함은 리트머스 시험지다. 내가 취업 과정에서 모든 걸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무전략 전략 응용

회사들도 보통 입사 내정자에게 출근을 하지 않으면 영업방해죄로 고소하겠다고 알리는 식의 조치를 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무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내정자가 노쇼를 한다면 애초에 뽑을 가치가 없었다는 게 자동으로 증명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인의 인간관계를 통제하지 않는 것도 유효한 무전략 전략이다.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순간 자동으로 만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서 뭘 하는지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면, 그렇게 미덥잖은 사람을 만나는 게 뭐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 돌아볼 일이다.


주식도 어쭙잖은 전략보다 지수추종 ETF를 꾸준히 사는 게 수익률이 더 좋듯이, 가끔은 골치 아프게 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는 무전략 전략을 활용해 보자. 어설픈 잔머리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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