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 불리는 우리의 기억 영역은 너무 작아서 끽해야 한 번에 7~9글자 정도를 외울 수 있는 귀여운 용량을 가지고 있다.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사람들은 그나마도 작은 이 영역의 대부분을 남들이 지금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살피고 예측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해 버린다. 그래서 혼자 하는 과업에는 뛰어난 사람도 남들 앞에서는 소위 '뚝딱이'가 돼서 얼을 타거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실제로 지능이 낮아지는 것이다.
소심이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주관식 퀴즈 맞추기에 에너지를 몽땅 낭비하기 때문에 스스로 기가 빨리는 내향형 인간이 된다. 내향인들도 마음 편한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지능이 올라가고 외향인처럼 떠드는 것도 눈치게임으로 인한 IQ 페널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을 사회적 죽음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거절을 잘 못 한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이 이 부분을 건든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는 네 마음가짐 자체가 글러먹었어'라는 식이다.
그런데 천성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가? 적어도 나는 실패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친화성(agreeableness)은 억제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강점이다. 그래서 나는 야매론에 따라 감정 통제류의 책을 분서갱유하고 더 실용적인 방법들을 탐색했다. 여기 소심하고 친화적인 사람들을 위해 '덜 뚝딱이'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겠다.
소심한 당신이 어떤 모임에 나갔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아무래도 좀 낯설고 어색해서 스스로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사람들이 어색해하는 당신을 쳐다보고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느냐고 당장 한마디 할 것 같다. 다들 속으로 당신을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할 것만 같아 벌써 불편하다. 움츠러들수록 실제로 더 노잼 인간이 돼간다.
이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있는 주변으로 원형 오로라를 상상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에 시각적인 구조물 상상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의식의 초점이 내부에서 외부로 즉시 옮겨간다. 내부에서 돌아가던 눈치보기 프로세스를 강제로 종료시키는 테크닉이다.
그다음, 그 자리를 자신이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특정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거창한 말로 하자면 목표 지향적 프레임 전환이다. 친목 모임이라면 즐거운 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대화를 풍성하게 할 소잿거리를 떠올려볼 수도 있고, 카페 벽에 걸려있는 그림이나 주변에 특이한 물건들을 관찰하면서 대화 소재를 탐색할 수도 있다. 발표를 하는 자리라면 상대방에게 내가 준비해 온 정보를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겠다는 목표에 집중한다. 상대방이 갸우뚱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지 관찰해 설명을 보충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신경 쓰는 식이다. 면접을 보는 자리라면 나의 이력과 지식을 잘 전달하고 회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얻어오겠다는 목표에 집중한다.
공간 오로라와 목표 지향적 마인드를 합치면 내 두뇌가 이 공간 안에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도록 모드가 바뀐다. 그 이후 진행과 결과는 본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부족할지라도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능력을 쏟아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임에 푹 빠진 아들이 당장 게임을 금지당한다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아들의 머릿속은 온통 금지당한 게임 생각으로 가득 찰 뿐이다. 게임에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려면 운동이나 만들기처럼 다른 집중할 만한 활동으로 게임을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도파민을 줄인 후에야 공부를 시킬 수 있는 단계가 된다. 나는 아들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아들로 커본 적은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인간의 뇌 또한 생각을 비우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대체만이 가능하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수록 상상 속의 코끼리는 더 선명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는 조언이 쓸모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신경 쓰지 말라는 조언 자체가 신경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집중할 만한 다른 구체적인 활동으로 인지적 초점을 돌려야 한다. 위에 제시한 원형 오로라가 예시다. 초점을 밖으로 던질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 초점을 밖으로 돌린 후 목표 달성 프레임으로 전환하면 깎였던 IQ가 복구되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