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쌍화차

by 최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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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산책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어슴푸레한 새벽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해는 아직 보이지 않더군요. 저는 추위에 맞서기 위해 철통같이 몸을 감쌌습니다. 그럼에도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바람은 살을 엘 듯 차갑고, 입김은 하얀 연기처럼 뿜어져 나와 공중에서 사라졌습니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는 고요한 겨울의 상징처럼 서 있었습니다. 거친 바람에 시달린 흔적처럼 앙상하고 메마른 가지는, 그 끝이 투명한 서리로 덮여 반짝였습니다. 땅에 떨어져 얼어붙은 낙엽들은 밟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로 아침의 정적을 깨트리며 겨울의 존재를 알리는 듯했지요.

둘레길에는 서서히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길 위의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게 녹이듯 규칙적으로 울렸습니다. 털모자를 쓰고, 두꺼운 패딩에 몸을 감싼 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팔을 가볍게 흔들며 활기찬 걸음으로 길을 나아가고, 또 다른 이들은 천천히 풍경을 음미하며 조용히 걸었습니다. 아침 둘레길의 풍경은 단순하지만, 서로 다른 속도와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평화로운 순간들이 하루의 시작을 밝히는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온몸을 감쌌습니다. 몸에 쌓였던 겨울의 냉기가 조금씩 풀렸습니다. 겹겹이 껴입었던 패딩과 모자를 벗어내자 마치 갑옷을 벗어 던진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지요. 집으로 돌아왔다는 작은 사실이 이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차가운 공기를 녹이기 위해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졌습니다.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기 위해 머신 앞에 섰던 저는 마음을 바꿔 쌍화차를 우려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내 몸에 둥지를 틀고 있는 감기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주전자에 물이 끓기 시작하며 부드러운 증기가 천천히 피어올랐습니다. 쌍화차를 담은 도자기 찻잔에는 잘게 썬 한약재들이 겹겹이 깔려 있었고, 뜨거운 물이 조심스럽게 부어질 때마다 차는 갈색으로 짙어졌습니다. 찻잔 위로 올라오는 진한 한약재 향은 집 안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말린 대추와 호두 조각이 살짝 떠오르며 차 표면에 잔잔한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쌍화차의 농밀한 빛깔에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잣 몇 알도 띄웠습니다. 드디어 쌍화차의 깊고 진한 맛에 마지막 완성을 더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싸니,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차갑고도 아름다운 겨울의 아침 산책길도, 안온한 집 안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주한 이 순간도,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한 순간들이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됐지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이유는, 격동의 2024년 12월을 통과하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이 애독자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1월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봅니다. 부디 모든 사람이 평범한 하루의 반복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2025년의 새해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쯤이면 일상을 위협하던 ‘감기’에서 해방될 거라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1‧2월호 (통권 제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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