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바람은 아직 겨울의 흔적을 품고 있지만, 가지 끝에 맺힌 연둣빛 새순이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길가나 담장 밑, 양지바른 곳에서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드러내는 민들레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흰 솜털을 두른 씨앗들이 둥글게 뭉쳐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민들레는 단순한 들꽃이 아닙니다. 겨울이면 잎이 말라 사라지는 듯하지만,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우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인지 민들레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백성을 뜻하는 ‘민초(백성 민, 풀 초)’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피어나며, 끝내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민들레.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지 막내딸인 저와 함께 지내셨던 친정아버지는 이른 봄이면 아침 산책길에 연한 민들레 잎을 캐오곤 하셨습니다. 사위가 좋아하는 나물이라며 내미시던 그 손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건네주신 어린 민들레를 깨끗이 씻어내고, 한 잎 한 잎 물기를 털어낸 후 향긋한 다진 마늘, 매콤한 고춧가루에 간장, 고소한 참기름과 깨소금을 더해 조물조물 무쳐냈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진 한 접시의 민들레 나물, 그 속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죠. 음식은 추억이라죠? 이제 다시 뵐 수 없기에, 봄날의 민들레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민들레는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것 없는 귀한 약재이기도 하지만, 간단히 차로 마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민들레 나물 대신 민들레 꽃차 한 잔을 마셔볼까 합니다. 찻잔에 말린 민들레꽃을 담고 뜨거운 물을 따르면 은은한 향이 퍼지면서 예쁜 모양으로 다시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향으로 한 번, 눈으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으로 한 번 더 즐기며, 자연이 선물한 순수한 풍미를 온전히 느껴봅니다.
민들레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자니, 이것이 단순한 차가 아니라 나에게 주는 정신적 위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에 흩어지면서도 다시 땅을 딛고 살아가는 민들레처럼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제 삶이 쓰디쓴 순간을 넘어서 달큰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한 잔의 차 속에서 발견했다고 하면, 차 한 잔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지치고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구라도 오늘 마시는 차 한 잔이 다시 일어설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3월호 (통권 제1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