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영 축구 선수를 만나다!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 화성시 시각장애인 실업 축구팀의 하지영 축구 선수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화성시 시각장애인 실업 축구팀이 창단 2년 만에 주요 전국 대회를 석권하며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출범한 이 팀은 시각장애인 필드 선수 4명과 비장애인 골키퍼 2명, 감독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모든 경기를 소리와 감각에 의존해 치른다. 화성시는 전용 경기장 조성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선수들은 안정된 환경 속에서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 하지영(38세) 선수 역시 이 팀에 합류해, 시각장애인 축구의 가능성과 도전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달에는 하지영 선수를 만나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화성시 유레카 팀에서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야기 하나_‘빛’의 기억
하지영 선수에게 시각장애는 어린 시절부터 삶의 일부였다. 시 신경 위축과 망막변성이 함께 진행되면서, 점차 세상의 빛을 잃어갔다.
“어릴 때 병원에서는 신경 위축이라고도 하고, 망막변성이라고도 했어요. 의사마다 다르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결과는 같았죠.”
하지영 선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현재 그는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상태, 전맹이다. 하지만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까지 그는 주변 환경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밝은 곳에서는 양말 색깔을 비교하거나,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차들의 형태와 색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그는 분명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광등 두 개가 나란히 켜진 방, 하나가 꺼지면 ‘불이 나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던 기억. 그러나 그마저도 점차 흐릿해졌다. 불이 켜졌는지 꺼졌는지를 눈으로는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집중해도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진행되었다.
“언제부턴가 형광등이 깜빡이는 것도, 모양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10년 전쯤부터는 불을 켜도, 꺼도… 아무 차이를 느낄 수 없었어요.”
하지영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구 광명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3학년 2학기부터는 서울맹학교로 전학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같은 시각장애를 지닌 친구들이 모인 환경 덕분에 어린 시절, 시력을 잃어가는 아픔을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
교실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기억한 적은 없었다. 짝꿍이 앉은 자리, 키가 큰 친구와 작은 친구 정도를 구분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의 형태조차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건 색깔이에요. 밝은 데서는 흰색과 회색을, 분홍색과 하늘색을 겨우 구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점점 흐릿해졌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세상이 무너지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에 숨어 있었다. 흐릿하게나마 보였던 색이 왜곡되던 순간. 흰색 같기도 하고, 회색 같기도 하고, 분홍색과 하늘색이 헷갈렸던 기억. ‘이제는 정말 잘 안 보이는구나!’ 하는 막연한 체감. 그 모든 변화가 쌓여, 그는 천천히 눈앞의 빛을 잃어갔다.
하지영 선수는 자신의 시력 변화 과정을 마치 오래된 기억을 꺼내듯 조심스럽게 꺼내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보였다’와 ‘보이지 않는다’ 사이의 간극이 아니었다. 차츰 흐려지고, 틀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이었고, 그 안에서 그는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제, 그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대신 마음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축구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 둘_소년의 꿈
“야구선수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릴 때 진짜 하고 싶었던 건 경찰관이나 119구조대원이었죠.”
하지영 선수는 어린 시절, TV 화면 속 ‘경찰청 사람들’, ‘긴급구조 119’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만의 꿈을 키워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에게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찰서에서 전화 받는 장면을 보고 그 정도의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야기인데요. 어린 마음에는 정말 진지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은 깨달았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들은 점차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고, 대신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야구를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각장애인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문득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관람만 하는 시간이 허송세월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직접 뛰고, 내가 직접 뭔가를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다양한 운동에 도전했다. 유도, 마라톤, 골볼, 스키, 탁구, 야구까지. 몸으로 부딪치며 자신만의 무대를 찾아 나갔다. 여러 종목을 경험한 끝에 하지영 선수가 정착한 종목은 바로 시각장애인 축구였다.
“축구는 정말 어렵거든요. 달리기처럼 그냥 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들어야 하고, 공을 다루는 기술도 좋아야 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요.”
축구는 시시각각 변하는 경기장의 위치를 감지하고, 동료들의 소리를 듣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영 선수는 오히려 그 어려움에 매료되었다. 처음 축구를 접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며칠 앓아누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도전 정신이 좋았다고 한다.
대학교 시절, 충청도에 있는 영동대학교(현재의 유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방학이면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서울까지, 혹은 학교가 있는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당일치기로 축구하러 오가곤 했다.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매주 그렇게 했어요. 몇 년 동안이나요.”
축구하는 동안만큼은 외롭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시각장애가 있는 채 일반 대학생활을 하며 겪었던 고독과 소외감을, 축구장은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하지영 선수는 주로 공격수 포지션을 맡고 있다. 물론 시각장애인 축구에서는 상황에 따라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며 맡기도 하지만, 그는 공격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수비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공격은 다르거든요. 공을 소유하면서, 다루면서 이동해야 하니까요. 그게 또 재미있고, 도전하는 맛이 있었어요.”
관람자가 아니라, 주인공. 하지영 선수는 스스로 그 길을 열어 나갔다. 그가 오랜 시간 뛰어넘어온 꿈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 무게만큼, 그는 단단하게 성장해 왔다.
“어릴 때 품었던 꿈들은 형태를 바꿨지만, 결국은 같아요. 누군가를 지키고 싶고, 스스로를 빛나게 만들고 싶었던 거죠.”
소년의 꿈은 사라진 게 아니다. 형태를 바꾼 채, 여전히 그의 가슴 속에서 뛴다. 축구공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야기 셋_축구와의 운명적인 만남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코너킥, 프리킥 같은 단어만 알았지, 그게 실제로 어떤 상황인지는 몰랐죠.”
하지영 선수는 그렇게 축구와 처음 마주했다. 2008년, 우연히 참가한 시각장애인 스키 캠프에서 한 선배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선배는 그에게 “한번 축구를 체험해 보지 않겠냐?”라고 권했다. 말만 들어도 낯선 세계였지만, 그는 선뜻 따라나섰다.
처음 찾은 곳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시각장애인 축구 동호회였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이 함께 공을 쫓았다. 하지영 선수는 규칙도, 동작도 전혀 모르는 채 경기에 뛰어들었다.
“일반 축구는 안 해봤어도 TV를 보면서 대충 알잖아요. 그런데 저는 글자만 알았지, 체감이 없었어요. 마치 장미꽃 이름은 알지만 꽃을 만져본 적 없는 것과 같았죠.”
골키퍼, 수비, 공격이 뒤섞이는 복잡한 축구장에서 그는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했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신기했고, 어렵기는 했지만, 신기했고 계속 잘하고 싶었어요. 경기가 기다려졌고 꿈에서도 축구하는 꿈을 꾸곤 했어요. 삶의 활력소, 원동력이 되어줬죠.”
하지영 선수가 활동 중인 화성시 시각장애인 축구팀은 2023년 11월에 창단됐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축구 실업팀이다. 화성시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도 곧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영 선수는 이제는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고,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단 첫해, 화성시 팀은 국내 시각장애인 축구대회 5~6개 대회를 석권했다. 하지영 선수는 올해 1월, 이 팀에 공식 입단했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5인제 경기를 기본으로 한다. 일반 축구가 11명이 뛰는 것과 다르게, 시각장애인 선수 4명과 비장애인 골키퍼 1명이 한 팀을 이룬다.
“쉽게 말하면 풋살하고 비슷해요. 대신 저희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경기에 특화된 여러 장치가 필요해요.”
축구공에는 소리가 나는 장치가 들어 있다. 구를 때 나는 소리를 따라 선수들은 공의 위치를 가늠한다. 또한 경기장 사이드라인에는 1.2m 높이의 킥보드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공이 경계선을 넘어가는 걸 막고 방향 감각을 돕는다. 선수들의 움직임에도 룰이 있다.
“공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할 때는 반드시 ‘보이(Voy)’라고 외쳐야 해요. 소리 없이 다가가 부딪히면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어길 경우 파울이 선언되고, 경우에 따라선 페널티킥이 주어집니다.”
또한 공정성을 위해 모두가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고글을 착용한다. 시각장애 정도에 따라 볼 수 있는 약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을 아이패치로 가리고, 그 위에 고글을 쓴다. 보호 기능도 있다. 부딪힐 때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꿈에서도 축구를 했어요.”
처음엔 룰도 모르고, 동작 하나하나가 서툴렀던 그였다. 그러나 하지영 선수는 어느새 자신만의 감각을 터득했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활력을 얻었다. 소년이 꿈꾸던 세상은 눈앞에 펼쳐지지 않았지만, 하지영 선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눈부시게 뛰고 있다.
이야기 넷_국가대표, 영광과 대가
2009년, 하지영 선수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서울과 김해, 충청도를 오가며, 2주에 한 번씩 먼 거리를 오가는 삶이었다. 그 모든 수고는 단 하나의 꿈을 향한 여정이었다.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소식은, 그렇게 기다려온 순간을 드디어 손에 넣은 듯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희생도 필요했다. 국가대표 발탁 이전에도 하지영 선수는 축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안마 일도 했었고, 성북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도 2년 4개월 일했어요.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는 6년 6개월을 근무했고요.”
대표팀 소집이나 대회가 있을 때면 그는 연차를 몰아 쓰거나 휴직을 택했다. 때로는 그만둬야 할 때도 있었다. 대표팀 훈련을 위해 직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퇴사가 아니었다. 생계, 생활, 미래의 불확실성까지 모두 걸린 선택이었다.
“많이 고민했죠. 하지만 결국엔 축구를 선택했어요.”
축구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 생계 자체를 걸고 이어간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가장 확실히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하지영 선수는 두 개의 경기를 꼽았다. 하나는 2015년, 일본 대회에서의 동메달 결정전. 당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마지막 골을 성공시키며 팀에 메달을 안겼던 순간이었다. 또 하나는 2021년, 전국장애인체전 결승전. 그때는 경북 소속이었다. 비록 해당팀이 강팀은 아니었지만, 결승전에서 하지영 선수가 결승골을 넣었다.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저로 인해 이겼다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아주 강한 팀을 상대로 이겼거든요. 그게 더 기뻤어요.”
현재 하지영 선수는 화성시 시각장애인 축구팀 소속 선수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긴 시간을 돌아, 그는 마침내 오롯이 자신만의 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다.
이야기 다섯_하지영 선수가 말하는 꿈, 도전, 그리고 팀워크
“축구는 저에게 삶의 원동력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 꿈을 붙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하지영 선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영 선수는 매 순간 그 사실을 체감하며 뛰고 있다.
“운동은 아무리 조심해도 부상이 불쑥 찾아올 수 있어요. 크게 다쳐서 수술대에 오르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항상 체력과 컨디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해요. 가끔은 생각해요.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안다. 선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제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에요. 남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영 선수는 현실적 여건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화성시 시각장애인 축구팀이라는 실업팀이 생긴 건 큰 진전이었지만, 여전히 후진 양성은 큰 숙제였다. 부상을 두려워하는 시선, 정보 부족, 접근성의 한계. 그가 체감하는 진입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축구는 정말 재미있는 운동이에요. 시각장애인 스포츠 중에 이렇게 원 없이 뛸 수 있는 운동은 없어요. 남의 손을 잡고 뛰는 것도 아니고, 러닝머신 위도 아니고, 스스로 내 공간을 뛰는 거예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정보도, 기회도 더 많이 열렸으면 해요.”
시각장애인 축구는 ‘소리’가 유일한 길잡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리로 묶인 팀’의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믿음은 연습 없이 생기지 않아요.”
하지영 선수는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며 수없이 훈련을 반복했다. 그는 각자의 강점을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메워가는 것은 반복된 연습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축구는요, 정말 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요. 말로만 설명하면 약 파는 것 같지만, 딱 세 번만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하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꾼다. 부상과 부담, 생계와 꿈 사이에서도 하지영 선수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믿는다. 뛰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알고, 느끼고, 꿈꿀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여전히 그는 경기장 한가운데서, 소리만을 의지해 가장 힘차게 달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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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6월호(통권 제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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