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소서에서 대서를 지나 초복과 중복 사이로 이어지는 시간, 여름이 본격적인 숨결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볕은 한층 더 강해지고, 초록은 더 짙어지며, 들녘과 산기슭의 풀잎들은 연신 제 몸을 태양 쪽으로 기울입니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공기엔 눅진한 기운이 감돌고, 하루가 다르게 매미 소리는 커져갑니다.
그 뜨거운 한복판에서, 바람결은 어느새 새로운 방향을 틉니다. 오래 닫혀 있던 창이 열리듯, 사람들 사이에도 서서히 희망의 빛이 스며들고, 저마다의 마음속에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이 깃듭니다. 아직은 미약한 시작일지라도, 모두가 향하고픈 대동세상의 빛이 여름 숲 너머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립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세상. 그 이상이 어느덧 현실의 바람결 속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피어나는 듯합니다.
이즈음엔 어떤 차가 어울릴까요? 저는 빨간 색깔이 매력적인 오미자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 다섯 가지 맛을 품었다는 오미자. 달고, 시고, 맵고, 짜고, 쓴, 그 복합적인 풍미는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연상케 합니다. 유리병에 곱게 담긴 붉은 열매를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만히 젖어들기도 하지요.
오늘은 오미자청에 탄산수와 얼음을 곁들여 차디찬 오미자 에이드를 한 잔 만들어보았습니다. 투명한 유리잔 안에는 루비빛 오미자 에이드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동동 띄운 얼음 조각들은 마치 여름 한복판에 핀 수정처럼 시리게 빛납니다. 그 사이로 탄산수에서 올라오는 기포들은 끊임없이 작은 물방울을 피워 올리며, 잔 안을 가볍게 간질입니다. 기포들이 톡톡 터질 때마다 혀끝을 스치는 청량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이 기포를 타고 더 풍성하게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첫 모금엔 달콤함이 입안을 감싸고, 이내 오미자 특유의 은은한 신맛과 쌉쌀한 뒷맛이 뒤따라오며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간 들녘에는 보리수나무가 있었습니다. 늦봄에서 여름 사이 붉게 익은 보리수 열매가 가지마다 매달려 있었지요. 오미자를 알기 전, 내 여름의 맛은 그 보리수 열매가 전부였습니다. 어머니가 따주신 열매를 입에 넣으면 단맛보다 먼저 새큼하면서 떨떠름한 맛이 퍼졌고, 이내 살짝 달콤한 뒷맛이 남아 입가를 오물거리게 만들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맛은 마치 여름을 조금 먼저 알아버린 아이만이 느낄 수 있었던 계절의 예고편 같았습니다.
그 옛날 어머니가 보리수 열매를 내 손바닥에 올려주셨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엄마가 되어 딸아이의 손에 오미자 에이드 잔을 쥐여줍니다. 문득 계절의 맛이라는 건 이렇게 세대를 타고 조용히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리수에서 오미자로, 그 붉은 열매의 기억은 시간 너머 또 다른 여름의 풍경으로 피어납니다.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마시는 일은 단순한 행동이지만, 그 안에 누군가의 계절, 마음, 추억이 함께 스며드는 법이라는 걸요. 보리수를 떠올릴 때마다 어머니의 손길이 문득 그리워지듯, 언젠가 딸아이도 오미자의 붉은빛을 마주하며 내 생각을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이 한 잔의 맛이 엄마와 함께한 여름의 조각으로 딸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
7월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달입니다. 계절의 한복판에서 피어나는 열매와 꽃, 쏟아지는 햇살과 소나기,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우리의 감정들.
하상매거진 독자 여러분은 이 여름 한복판에 어떤 마음을 식히고, 어떤 새로운 시도를 품고 계신가요. 땀이 흐르고 숨이 차는 날들이지만, 잠시 멈춰 한 잔의 차를 우려내듯,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오미자차의 붉은 기운처럼, 여러분의 여름에도 깊은 맛과 색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7‧8월호 (통권 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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