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 8년 만의 선물, 세계 시각장애인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 목에 건 ‘김현빈’ 선수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유도는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지혜의 기술이다. 창시자 가노 지고로가 말한 ‘精力善用 (정력선용)’은 유도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수련하는 무대임을 말해준다. 이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도전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이가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 평택시청 소속 유도 국가대표 김현빈(J1, 25세) 선수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매트 위에서 누구보다 선명한 감각으로 싸운다. 눈이 아닌 손끝과 발끝, 온몸의 촉각으로 상대의 중심을 읽고, 균형이 흐트러지는 찰나를 포착한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훈련을 반복하며 그는 ‘보이지 않는 경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부를 배워가고 있다. 올해로 국가대표 6년 차. 그는 이제 ‘가능성’이란 단어를 넘어, ‘경쟁력’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불리함에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단련의 조건으로 삼아온 이 젊은 선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와 강함에 대해 다시 묻는다.
“당신은 무엇으로 싸우고, 무엇을 지켜내고 있나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김현빈 선수가 어떻게 훈련하고 경기에 임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들어봤다.
이야기 하나_ 결정적 순간과 전략의 직감
2025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세계시각장애인 유도 선수권대회. 모든 것이 걸린 동메달 결정전이 마지막 4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김현빈 선수는 연장전을 염두에 두고 몸을 움직였다. 지친 몸이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경기에 몰입해 있었다. 그 순간, 안뒤축감아치기. 정교하게 감긴 그의 기술에 상대는 중심을 잃었고, 경기장은 순식간에 환호로 가득 찼다. 경기의 승패가 그 기술로 결정될 거라는 예감은, 정작 그 자신에게조차 없었다고 했다.
“솔직히 넘어갈 줄 몰랐어요. 그냥 던졌죠. 연장전 갈 생각이었는데, 단수가 잘 맞았던 거예요. 생각에 앞서 몸이 반응한 거였어요.”
담담한 말투 속에는 의외로 계산된 치밀함이 숨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 순간을 ‘기적’이라 불렀지만, 김현빈은 이미 자신 안에서 오래도록 쌓아온 감각의 결과였다고 믿고 있었다. 코치의 지시나 외부의 피드백보다 먼저, 스스로 상황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 그는 그런 직감을 ‘자신감’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시합은 제가 하는 거잖아요. 기술을 걸 때도, 그 순간 어떤 판단을 내릴지 결정하는 것도 결국 저고요. 평소에도 자신감 있게 훈련하다 보니까 경기 중에도 제 촉을 믿는 편이에요.”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메달은 우연이 아니었다. 경기장을 자신의 무대로 만드는 태도는 시합 전부터 이어졌다. 당시 현장은 상대국인 홈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으로 가득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긴장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의연했다.
“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편이 아니에요. 성격이 좀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 주위에서 뭐라 해도 별로 흔들리지 않아요. 신경이 안 쓰였어요.”
김현빈 선수는 극한의 압박 속에서도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경기를 주도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외부 환경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태도는 큰 경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필요한 순간엔 과감히 기술을 시도하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결단력 역시 그런 강인한 정신력에서 비롯된다. 결국 그는 흔들리지 않는 멘탈과 자기 확신으로, 불리한 상황조차 자신의 기회로 바꿔내는 ‘경기의 주인’이 된 것이다.
김 선수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를 ‘이긴 경기’가 아니라 ‘진 경기’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선수에게 당했던 기술을 떠올리며 몸으로 배우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일반 선수들처럼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분석할 수 없다. 대신 코치나 감독이 직접 상대의 기술을 재현해주면, 그걸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한다.
“직접 해보는 게 제일 빨라요. 기술이 언제 들어오는지, 어떻게 방어해야 안 넘어가는지를 몸이 먼저 기억하게 해요. 그게 저만의 방식이죠.”
이탈리아 선수와 겨룬 경기에서 그는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다고 했다.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진 틈을 상대가 놓치지 않았다. 기술적인 실수만이 아니라, 심리적 허점도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훈련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보통은 4분씩 14판을 연습해요. 다들 중간쯤에 한두 판 빼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제일 지쳤을 때 한 판 더 해요. 집중이 흐트러질 때, 그때 딱 집중해서 기술을 거는 연습. 그게 진짜 시합이랑 비슷하거든요.”
모두가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 한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들며 자신만의 전투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에겐 ‘잘 던지는 힘’ 못지않게 ‘끝까지 집중하는 힘’이 중요하다.
김현빈 선수에게 유도는 단순한 경기 이상이다. 시야가 차단된 세계에서, 그는 몸의 감각과 판단, 심리적 균형을 통해 상대를 읽고, 타이밍을 재고, 틈을 만든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 4초는 단지 찰나가 아니라, 수천 번의 훈련과 순간의 결심이 맞물린 결정적 한순간이었다.
“그건 그냥, 제가 준비해 온 모든 게 한 점으로 모인 순간이었어요.”
결정적인 순간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은, 그 어떤 외부의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현빈은 또 다른 ‘4초’를 향해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이야기 둘_시각을 잃고 손끝으로 세상을 배운 시간
다섯 살, 열병 이후 김현빈의 세상은 점차 어두워졌다. 병원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시야는 서서히 좁아졌고, 밝음과 어두움 정도만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낮에는 눈부심이 심해 혼자 걷는 것이 어렵고, 가까운 거리의 형체만을 희미하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한 15~20cm 거리까지는 뭐가 있다는 정도만 알아요. 스마트폰 화면도 읽어주는 기능이나 확대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서 보곤 하죠.”
김 선수는 18살이 되어서야 서울맹학교로 전학을 가 시각장애 특수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일반학교를 다녔다. 시력이 사라져가던 시기의 기억은 흐릿하다.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열이 나고 난 뒤부터 눈이 나빠졌다고 한다. 그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는 손끝으로 세상을 익히는 법을 배웠다. 물건의 위치와 형태를 직접 만지며 기억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유도를 향한 꿈은, 그에게 감각의 세계를 넓혀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유도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유도를 하냐고요.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셨죠.”
중학교 내내 동경만 하다, 결국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부모님을 설득해 유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고 싶었지만 눈 때문에 못 했던 유일한 것이 지금 하고 있는 유도”였다.
전공은 ‘관광 레저 경영’이었다. 특성화고에서 기술을 배워 사회로 나가는 과정이었지만, 그의 관심은 늘 운동에 가 있었다. 부모님은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가까운 학교에 보냈고, 김현빈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 나섰다.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경기를 펼쳐야 하는 시각장애 유도는 누구보다 촉각에 의존해야 한다. 그는 시합이나 연습 모두 상대 선수와 도복을 맞잡고 시작한다.
“잡기 싸움이라는 게 있어요. 본인이 도복을 유리하게 잡아야 기술을 걸 수 있거든요. 시각장애 선수들은 연습도 경기처럼 맞붙은 상태에서 시작해요. 그 상태에서 도복을 당기고 밀고 하면서 상대의 무게 중심이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끼죠.”
훈련의 방식도 다르다. 눈 대신 손끝이 중심이다. 상대의 중심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훈련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정해진 상황을 전제로 두고 반복 연습해요. 상대가 이런 자세를 취할 때, 이럴 때 기술을 걸어야 한다는 걸 예상하고 움직이는 거죠. 그러다 점점 실전에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상대한테 기술을 시도해보면서 몸이 익혀가는 거예요.”
반복과 체득.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자동 반응’이라는 신체의 감각을 만들어갔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보지 못한다’는 말로 환원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감각을 길러내야 하는 과정이다. 김현빈은 그 길을 손끝으로, 그리고 몸 전체의 감각으로 걸어왔다. 어릴 적의 유도에 대한 열망은 결국 그를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했고, 지금 그는 보이지 않는 싸움 속에서도 누구보다 예리한 감각으로 상대를 읽어낸다. 눈을 감고, 세상을 만지는 법을 배운 그의 감각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이야기 셋_유도와 나, 계속되는 도전
김현빈 선수가 유도를 처음 만난 건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보통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도복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대를 번쩍 들어 던지는 순간의 박력, 기술이 정직하게 통하는 승부의 세계.
“운동은 원래 곧잘 했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런데 던지고 조르고 하는 유도 기술이 꽤 멋있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기대가 컸어요.”
하지만 기대만으로 운동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시각장애를 지닌 채 비장애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늦은 시작, 다른 신체 조건, 익숙지 않은 기술들.
“선수 기준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유도를 시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기술 이해도나 무게 중심 감각 같은 건 경력으로 쌓이는 건데, 시각적인 차이도 있어서 기술을 익히는 데 한계가 느껴졌죠.”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시합에서 질 때, 기술이 제대로 안 먹힐 때, 그리고 부상을 입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눈도 나쁜데 무릎도 다치고 그러면… 그때는 좀 우울해졌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때죠.”
물론 그는 그만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유도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도복을 입는 순간마다 가슴이 뛴다. 상상 속에서 그려온 기술을 실제로 시도해보는 일이 여전히 짜릿하고 즐겁다. 유도가 없는 삶은 이제 상상조차 어렵다. 그에게 유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존재 이유 그 자체였다.
지난해 그는 파리 패럴림픽 체급 개편에 따라 기존의 60kg급에서 70kg급으로 체급을 올려야 했다. 체중이 잘 늘지 않는 체질인 데다 하루 운동량도 많은 편이어서, 의도적으로 많이 먹으며 체중을 불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유도에서 10kg을 늘리는 것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였다. 두 체급을 뛰어오르는 셈이었기에,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큰 부담이 따랐다.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가능했지만, 체급을 바꾼 뒤에도 상대 선수들과의 피지컬 차이에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존 체급이 사라진 상황에서, 올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지금은 체중을 약 71kg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낯설고 버거웠던 체중도 이제는 몸에 익었고, 몸도 점점 적응해 가며 그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훈련은 하루 세 번.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도복을 입고 실전 대련, 그리고 밤에는 본인이 원하는 보완 운동을 자율적으로 한다.
“야간에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해요. 도복을 다시 입고 기술을 연습하거나, 그냥 뛰기도 하고, 아니면 역기를 들기도 해요. 유도는 연습과 시합이 똑같거든요. 인사하고 던지고, 그게 곧 경기죠. 그게 재밌어요.”
운동량만큼이나 강한 건 그의 내면이다. 김현빈 선수는 힘이 되는 사람을 일부러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면, 그 사람 탓을 할 수도 있잖아요. 내 시간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일부러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게 됐어요.”
명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어른이 되면서, 시간과 선택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감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담을 쌓은 것은 아니다.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외롭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더라고요. 또 어떻게든 기회가 와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순간들이. 그런 시간들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시합이 끝난 후,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승부의 여운보다는 담담함이 먼저였다. 김 선수의 어머니는 자주 다치는 아들을 늘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유도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며 아들의 건강만을 빈다고. 반면, 처음에는 아들의 유도 입문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지금은 누구보다 그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한다.
한때는 낯설고 두려웠던 도복의 감촉이 이제는 그에게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이 되었다. 넘어지고 다치기를 반복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결국 유도라는 운동 자체가 가진 힘이었다. 그는 유도가 힘들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도전하게 된다고. 유도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그가 스스로를 밀어붙일 수 있는 방식이며,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기 훈련의 장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유도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고독하고 치열한 수련의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야기 넷_사람들과의 연결, 그리고 앞으로의 길
김현빈 선수는 인터뷰 내내 담담한 말투 속에서도 확고한 신념과 단단한 내면을 드러냈다. 평택시청 장애인 유도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 연결은 지도자와의 관계, 라이벌과의 경쟁, 일상의 루틴, 그리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까지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는 평택시청 유도팀의 원유신 감독과 이정민 코치를 언급하며 먼저 ‘수평적인 관계’라는 표현을 꺼냈다.
“감독님 하면 거리감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원유신 감독님은 먼저 다가오세요.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고, 농담도 하고, 커피도 함께 마시면서요.”
단순히 훈련을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선수로서 스스로의 마음을 열고 의견을 전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마련해주는 존재. 그것이 김현빈 선수가 말하는 ‘감독’이다.
이정민 코치에 대해서는 조금 더 특별한 감정을 내비쳤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두 차례 패럴림픽 메달을 따낸 이 코치는, 김현빈 선수에게는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선배’이자 ‘몸의 조건을 이해하고 조언해주는 안내자’다.
“눈이 나쁜 걸 감안해서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세요.”
이는 단순한 기술 지도가 아니라,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깊이 있는 조력이다.
그가 라이벌로 언급한 인도 선수 카필 파르마르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두 번의 패배 뒤 그는 “세 번째는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첫 번째 시합은 코로나 확진 직후였고, 두 번째는 햄스트링 부상 상태에서 치른 경기였다.
“다친 데 없이, 병든 데 없이, 제 컨디션이 완전한 상태에서 한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어요.”
그는 아쉽게도 지난 대회 8강에서 그 인도 선수를 만나지 못했지만, 진정한 실력으로 겨루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패럴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서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정신적인 두려움”이라고 답했다. 기술, 체력,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고 주춤하게 만드는 내면의 장벽이야말로 가장 먼저 깨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무게 있는 훈련이 없는 날, 그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아침 일찍 일어나 헬스장에 다녀오고, 씻은 뒤에는 반려견 ‘리치’와 시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운 소형견인데요, 미니어처 핀셔예요.”
산책을 마친 후 유도장 근처를 찾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시각장애인용 모드를 활용해 즐긴다. 그렇게 그의 일상은 유도와 이어진 리듬 안에서 조용하지만 성실하게 흘러간다.
시각장애인 유도는 패럴림픽 종목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편이다. 그는 시각장애인 유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더 나아가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되길 바랐다. 유도에 대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덩치 크고 거친 운동’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접근 방식조차 막막하게 느껴진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유도라는 스포츠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함께할수록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운동이라 믿는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거두고 유도를 경험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배나 장애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현빈 선수는 “대부분 장애인분들이 뭔가 하기에 앞서 두렵고 물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신감 있게 도전하면 부족한 부분은 주변에서 도와주시기도 해요.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가며 수많은 두려움을 극복해온 이가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의 삶과 말 속에는 유도라는 종목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를 단련해온 태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장애와 운동,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 김현빈 선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9월호(통권 제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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