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덤 사이클 파일럿 조선 선수를 만나다!

by 최연신

인터뷰―만나고 싶었습니다


�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탠덤 사이클 파일럿 조선 선수를 만나다!


기획 및 취재 최연신(하상매거진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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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균형을 잡지 못해 수없이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눈물이 맺히지만, 어느 순간 두 바퀴가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 짧은 찰나의 ‘균형’을 찾아내는 순간, 세상은 달라진다. 두려움이 자유로 바뀌고, 넘어짐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예행연습이 된다.

조선의 인생도 그랬다. 씨름 선수로 시작해 부상으로 운동을 접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던 청년. 어느 날 다시 잡은 자전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는 수업’이 되었다. 그는 바람을 가르며 길의 질감을 온몸으로 읽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며 잊고 있던 자존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2022년 가을, 그의 인생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시각장애인 사이클 선수 김정빈의 ‘파일럿’으로 함께 타는 탠덤 사이클 제안을 받았다. 한 대의 자전거, 두 개의 심장, 한 방향의 바람.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눈을 대신해 길을 읽는 사람의 완벽한 호흡. 조선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첫 페달이 돌던 순간 알았다. 탠덤 사이클은 기록이 아닌 ‘신뢰의 운동’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곧 세계 무대에 섰고, 그들이 만들어낸 속도는 시속 7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그 속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믿음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2023년 12월, 도쿄의 트랙 위에서 그 믿음은 한순간에 멈췄다. 펜스를 스치는 금속음과 함께, 그의 몸은 공중으로 던져졌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는 부러지고, 경추는 금이 갔으며, 가슴 아래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후의 시간은 절망과 고통, 그리고 다시 살아내는 의지로 채워졌다.

지금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재활 중이다. 손가락이 1cm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다시 열린다. 느리지만 단단한 속도로, 그는 또다시 길 위를 향한다. 자전거는 이제 그의 삶을 증명하는 언어이자, 세상과 이어지는 다리다. 그는 말한다. 장애는 신체가 아니라 마음의 벽이라고. 스포츠는 기록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닫힌 마음을 다시 세상으로 연결하는 첫걸음이라고.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첫걸음 위에 선 한 사람을 만난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파일럿, 조선 선수. 그의 이야기는 속도를 잃은 세상에 묻는다. 진짜 ‘달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나_씨름 특기생에서 탠덤 파일럿까지


1974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조선은 중학생 시절 씨름 특기생이었다. 낮은 무게중심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감각, 발바닥으로 매트를 읽던 시절의 근육 기억은 그에게 처음으로 ‘움직임의 언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무릎 부상은 그 언어를 갑자기 끊어버렸다.

“고2 때였죠. 무릎을 다치면서 운동을 접어야 했어요. 그래서 체육과로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스포츠용품 도소매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주로 스키나 방한용품을 취급하는 회사였다. 영업 일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어느새 체중이 늘고 몸이 무거워졌다. 운동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된 하루 속에서, 그는 문득 거울 속 낯선 자신을 마주했다. 예전의 운동선수였던 자신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순간 결심이 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가 다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전거였다. 처음엔 단순히 건강을 위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지만, 그 두 바퀴는 곧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 빠르고, 자동차를 탈 때보다 세상을 더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온몸으로 길의 질감을 느끼는 순간, 그는 다시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 후 지역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달리며 실력을 쌓았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 입상을 거듭했다. 자전거는 이제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인생의 또 다른 축이자 자신을 증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자전거가 제 삶의 중심이 되어 있었어요. 동호인 대회, 외국 대회… 나이대에서는 정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시각장애인 선수와 함께 타는 탠덤 자전거’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다. 그 만남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낯선 감각 속에서도 길을 읽고, 속도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서로의 신호와 균형으로 움직이는 그 경험은 스포츠를 넘어 신뢰의 예술로 느껴졌다. 그렇게 조선은 ‘파일럿’이 되었다.

“바람을 가르는 그 순간, 세상이 제 안으로 들어옵니다. 두 바퀴 위에서 저는 다시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달림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지금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산다. 15년 전 일터를 따라 내려와 정착한 이곳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재활의 무대가 되었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회사를 정리할 예정이지만, 그는 그것을 끝이라 부르지 않는다. 여전히 ‘달림의 언어’를 잃지 않은 채, 매일의 시간을 다시 달리고 있다. 재활 운동을 마친 뒤, 조선은 손가락이 조금 더 움직이길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의지는 단단하다.

그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페달을 밟는다. 그 마음속 자전거는 멈춘 적이 없다.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와 노면의 감촉, 그리고 다시 오를 그날의 속도를 그는 이미 기억하고 있다.

“속도는 제게 자유의 다른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 자유가 아직 제 안에 있습니다.”


이야기 둘_두 바퀴 위의 신뢰, 두 사람의 호흡으로 완성된 속도


조선이 처음 김정빈 선수를 만난 것은 2022년 가을, MBC 다큐멘터리 〈바람되어 너와〉를 통해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백상예술대상 후보에도 오른 화제의 작품이었다. 그는 처음에 주저했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타야 하는 자전거라니,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한 대의 자전거를 나눠 타면 중심이 흔들릴 수 있고,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는 작은 비틀림이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새로운 자전거의 세계를 알아보자”는 제작진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조선은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김정빈 선수와 마주 앉은 첫날, 두 사람은 인사를 짧게 건네고 30분 넘게 자전거 이야기만 나누었다.

조선은 놀랐다. 앞을 볼 수 없는 김정빈이었지만, 자전거를 이해하는 감각은 놀라울 만큼 자신과 닮아 있었다.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쌓은 세계, 그 안에서 길의 질감과 바람의 무게를 느끼는 법은 오히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섬세했다. 그 대화 속에서 조선은 직감했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달릴 수 있겠다.

첫 시도는 쉽지 않았다. 페달에 힘을 싣자마자 자전거는 좌우로 흔들렸고, 작은 진동에도 긴장감이 팽팽히 감돌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이 앞에서 “오른쪽!”, “지금 일어서!”라고 신호를 보내면, 김정빈은 그 리듬을 정확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불안과 신뢰가 교차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두 사람은 점점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선은 혼자 탈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집중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건 나 혼자 가는 자전거가 아니구나. 함께 나아가는 일이다.

“탠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려와 믿음입니다.”

눈을 감고 맡기는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선, 앞의 사람이 절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앞에 앉은 파일럿은 뒤의 체온과 리듬을 느끼며 상대의 긴장까지 읽어야 했다. 서로의 신뢰가 깊어질수록 속도는 점점 안정되고, 두 사람의 호흡은 더 정밀해졌다. 조선은 그 과정을 ‘서로의 리듬을 맞춰가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합숙소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잠자리와 식사, 이동까지 언제나 함께였다. 조선은 식당으로 향하는 좁은 복도에서도 김정빈의 팔꿈치를 잡고 걸으며 보폭을 맞췄다. 그렇게 해야만 시각장애인 선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통해 파트너의 감각에 자신을 맞춰갔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한 몸으로 달리는 자전거’가 완성되었다.

그들의 신뢰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은 영국 세계선수권이었다. 유럽의 거친 노면, 굽이치는 내리막 코스에서 시속 75킬로미터를 넘겼을 때였다. 노면의 진동이 두 발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두 사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조선은 브레이크를 쥔 손끝의 감각으로 김정빈의 긴장을 읽었고, 김정빈은 말없이 조선의 리듬을 따라갔다. 그 몇 초의 질주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포보다 신뢰가 더 빠르다’는 진리를 새겨준 순간이었다.

시합 밖에서도 그들의 교감은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이면 조선은 길 위의 풍경을 묘사했다.

“지금은 들판이야, 오른쪽엔 감나무가 있어.”

그는 김정빈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대신 설명해 주며, 한 사람의 눈이 되어주었다. 그 순간 조선은 자신 안의 결핍도 함께 채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저 사람의 부족한 한 조각을 내가 메워준다면, 내 안의 빈자리도 채워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날 이후, 탠덤은 신뢰의 도구이자, 서로의 세계를 연결하는 언어였다. 두 사람의 페달은 두 개의 다리로 움직였지만, 그들이 만든 속도는 언제나 하나였다.


이야기 셋_멈춘 속도 속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


2023년 12월, 도쿄. 공기는 겨울이라기엔 다소 따뜻했고, 조선과 김정빈의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그날은 경기 전부터 유난히 기분이 고조돼 있었다. 세계선수권에서 만난 폴란드 선수 팀과의 재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두 사람은 “이번엔 꼭 이기자”는 약속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기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반팔과 반바지를 택했고, 그 선택이 마치 승리를 예감하게 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페달은 경쾌하게 돌기 시작했다. 트랙의 공기가 칼날처럼 갈라지고, 타이어가 노면을 움켜쥘 때마다 속도는 더해졌다. 그때였다. 뒤 타이어가 터지는 ‘펑’ 하는 소리가 울렸고, 균형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조선은 본능적으로 오른쪽 펜스 쪽으로 자전거를 붙였다. 최대한 부상을 줄이자. 그러나 그 조심스러운 제어가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키며 몸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와당탕.

차가운 노면에 부딪히는 충격, 그리고 곧 찾아온 정적. 조선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김정빈이었다.

“정빈아, 괜찮아?”

“형은요, 괜찮아요?”

둘 다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찾았다. 김정빈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살아 있었다. 그의 다리는 피투성이였고, 조선은 오른팔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공포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구급차 안에서도 자신을 다독였다. 아마 너무 놀라서 그럴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희미한 낙관은 산산이 부서졌다. CT 촬영과 감각 테스트가 이어졌다.

“그때 의사가 제 다리를 핀으로 찔렀어요. 감각이 있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죠. ‘아니요… 안 느껴져요.’ 그 말을 하는데, 순간 공기가 꽉 막히는 것 같았어요. 어깨는 부러지고, 목뼈엔 금이 갔고, 가슴 아래는 아무 감각이 없었어요. 몸을 움직이려 해도 전혀 반응이 없더라고요. 마치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병실은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으니까 그게 더 무서웠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그 생각만 계속 맴돌았어요.”

조선은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몸이 굳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때 그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믿었다. 정신만 붙잡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시간은 잔인했다.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감각도, 움직임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잠깐의 마비가 아니구나. 내 몸이 정말 멈춰버린 거구나. 그 인식이 들이닥친 순간, 그의 세계는 조용히 무너졌다.

그때 그를 지탱한 건 사람들의 존재였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동료 선수들과 팬들이 댓글을 남겼다. 짧은 위로의 말, 간절한 기도, 함께 흘린 눈물. 그 가운데 한 문장이 조선의 심장에 남았다.

“포기할 때까지, 끝이 아니다.”

그 문장은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병상 위에서 하루하루 되뇌며 버텼다. 포기하지 않으면 아직 끝이 아니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문장은 계속 그를 움직였다. 김포공항으로 달려온 동료들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조선은 그 눈물 속에서 자신이 아직 ‘팀의 일부’임을 느꼈다. 아내는 그의 손이 되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고, 다리가 되어 침대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다시 걷는 연습으로, 그리고 재활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그는 그날의 트랙을 잊지 못한다. 부러진 뼈보다 오래 남은 건 속도의 기억이다. 시속 70킬로미터로 달리던 그 순간의 바람, 그리고 그 직후의 정적. 그 모든 것이 아직 그의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날 이후,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을 믿어요. 포기할 때까지, 끝이 아닙니다.”

그 문장은 이제 그의 것이 되었고, 다시 누군가의 좌우명이 되기 위해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 같은 사고를 겪은 한 부부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남편이 병상에 누워 절망에 잠겼다는 이야기였다. 조선은 그들에게 자신이 받은 말을 그대로 건넸다.

“포기하지 마세요. 가족이 곁에 있잖아요. 끝은 우리가 멈출 때 오는 겁니다.”

그가 여전히 싸우고, 여전히 회복 중이라는 사실은 단지 생존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속도의 끝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의 증거다.


이야기 넷_제도의 벽과 목소리


사고 이후 조선은 또 다른 벽 앞에 섰다. 그것은 트랙의 펜스보다 높고, 병실의 벽보다 차가운 ‘제도의 벽’이었다. 그는 다친 몸을 이끌고서야 현실을 알게 되었다. 시각장애인 선수와 함께 페달을 밟는 ‘파일럿’은 국가대표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시합의 승패는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에 달려 있음에도, 제도는 그를 단지 ‘도우미’로 취급했다. 장애인 선수의 기록이 빛날수록 파일럿의 존재는 더 깊이 그림자에 묻혔다.

“파일럿의 기량이 좋지 않으면 시각장애인 선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요.”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늘한 현실 인식이 배어 있었다. 함께 훈련하고, 같은 위험을 감수하며 달려왔지만, 보상 체계와 행정의 언어 속에서 파일럿은 여전히 ‘선수’가 아니었다.

사고 직후 아내의 체류비는 지원이 되었고, 통역은 일본 주최 측에서 담당했다. 다만 일본 병원비는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미수금 처리가 되었고, 귀국 후 5개월이 지나서야 장애인체육회의 보상 결정이 확정되었다. 무엇보다도 국내로 이송될 때 환자 이송 전문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해, 아내와 단둘이 어려운 상황에서 귀국해야 했다. 이동 중 고통과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힘겨운 과정이었으며, 의료 인력이나 제도적 지원 없이 두 사람이 해내야 했던 일은 너무나 벅찼다.

그는 그 순간을 ‘공포’라고 표현했다. 생명의 위기보다 더 깊은, 제도적 공백의 공포였다. 그는 연맹과 선수 대표,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동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이름 모를 시민들이 유튜브 댓글과 송금으로 응원을 보냈다. “힘내세요, 꼭 다시 타세요.” 작은 금액들이 쌓여 그에게는 생명줄이 되었다.

“솔직히 정부나 단체보다 응원한 분들이 저를 살렸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의 말 뒤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따라붙었다. 자신은 보상을 원하지 않지만, 다음에 같은 일을 겪을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그날의 깨달음을 되새긴다. 파일럿은 단순한 조력이 아니라, 한 몸으로 달리는 ‘또 하나의 선수’다. 그 지위가 명확히 보장될 때, 비로소 시각장애인 스포츠는 완성된다.

“이런 현실이 드러나야 바뀔 겁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저처럼 무너지지 않겠죠.”

조선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강한 신념이 살아 있었다.

이야기 다섯_다시 삶으로

병실의 창문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던 어느 날, 조선은 손끝을 바라봤다. 아무 반응이 없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바람보다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그에게는 생의 기적이었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그래, 이 손이 움직였으니 다시 탈 수 있겠구나.

그는 처음엔 다시 두 바퀴 자전거를 타는 걸 목표로 했다.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꿈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었다.

“몸이 내 뜻대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죠. 세발자전거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타는 것’이에요. 나를 도와준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 함께 바람을 느끼는 거. 그게 제 목표예요.”

자전거는 그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삶의 증명이자, 존재의 언어였다. 페달을 밟는다는 건 다시 ‘살아간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역시 아내입니다.”

사고 직후 몇 달 동안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침대 위에서 코가 간지러워도 긁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그의 손이 되어주었다. 얼굴을 닦아주고, 머리를 돌려주고, 대소변까지 모두 돌보았다.

“코 좀 긁어줘, 오른쪽으로 돌려줘… 하루에도 수십 번 그런 부탁을 했어요. 아내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했죠. 아내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누워 있으면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런 어두운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내가 제 손을 잡아줬어요.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렇게 버텼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정말 공기처럼, 제 곁에 당연히 있어 준 존재예요.”

재활의 길은 느리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빛이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1cm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다시 열렸고, 그 작은 움직임 속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배워나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는 마음속으로 감사를 되뇌었다. 몸이 멈춰버린 경험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쳤던 일상. 손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응원과 온기가 그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이제는 그 온기를 되갚을 차례였다. 그는 다짐했다. 누군가 절망의 자리에 있을 때, 자신이 그 곁에 서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것이 자신이 다시 살아가는 이유이며, 또 한 번의 출발선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애인 스포츠의 현실과 앞으로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는 장애를 입은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은 신체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다. 사고 이후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낯선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말했다. 장애를 겪게 되면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고 만다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창밖에는 여전히 햇빛이 있고, 그 빛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다고. 그가 믿는 스포츠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스포츠는 기록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닫힌 마음을 다시 세상과 이어주는 첫걸음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장애인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는 메달이나 성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있다고. 제도와 행정의 틀 속에서 잊히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진짜 체육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그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온 사람으로서의 다짐이기도 했다. 아직 페달을 밟을 수는 없지만, 마음은 이미 길 위에 있었다.

“저는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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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월간문화교양지 하상매거진 2025년 12월호(통권 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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