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작가란,
무거운 수면 아래, 콘크리트를 발에 묶고 서서히 가라앉는다. 심해는 어둡고, 차갑고, 예측할 수 없다. 20대 중반 즈음, 꿈은 사실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 시절,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유일하게 말을 걸어줄 친구였고, 연결된 게임기를 붙들며 혼자만의 한계를 시험하던 도전이었고, 달콤한 간식을 같이 먹어줄 식구였다. 희미해지는 어린 기억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TV 속 장면들, 그리고 그 앞에서 웃고 있는 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보물을 따라가는 작은 지도로 남아있다.
무의식의 바닷속에서 보물을 따라 정처 없이 헤매다가, 결국 ‘방송국’이라는 곳이 내가 향하던 목적지구나 새겼던 것이 중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작은 상자 앞에서 나는 웃고, 울었고, 다시 웃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꿈’이라는 것이 태어나고야 말았다.
꿈은 아주 가벼운 바람 같았다. 양팔을 벌려 돛대를 펼쳤을 뿐인 나를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밀어주었고, 죽도록 하기 싫은 일에 억지로 노를 저어야 할 때면 파도를 만들어 함께 밀어주었다. 가끔 폭풍우를 만나거나 돌부리에 걸려 좌절을 겪어야 했지만, 다음날 해가 뜨고 맑은 날이 찾아오면 꿈은 언제나 따숩고 든든하게 내 곁을 다시 맴돌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곁에 꿈이 있는 너가 부럽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송곳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배에 점차 구멍이 뚫렸다. 구멍으로 차오르는 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이곳을 막으면 저곳이 뚫렸고, 저곳을 막으면 또 다른 곳에서 물이 샜다. 더 이상 막는 걸 포기한 청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 기도라고 생각했다. 빌었다. 시간을 멈춰 달라고. 뽀글뽀글 차오르는 기포소리, 숨이, 공기가 희박해진다.
뽁, 어릴 때부터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구름이 예뻤고, 하늘이 하늘색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끔 뒷산에 올라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볼 때면 넓은 하늘이 시야의 절반을 딱 차지한 그 순간이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황금기가 되곤 한다. 뽁, 눈을 감았다 떠보면 투박한 명동 백화점 옥상에 올라있다. 혼자 날아보겠다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포기한다. 저 아래 건널목에 예수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모두 처음 보는 양갱을 들고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웃음에 흩뿌려진 재가 되고 싶진 않다며, 역시 무리라고 생각해 버렸다. 뽁.
꿈이었다. 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고, 점차 죽어가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흔들어 위를 향해 헤엄친다. 돌아가자. 육지로. 대륙으로. 내 사람들에게로. 보물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을 때의 쪽팔림은. 감수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자존심 부리지 않겠다고. 순간,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꿈이었다.
깊은 바닷속에 내던져진 채로 선택해야만 했다. 나를 붙잡고 보물을 찾고 싶다며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타협해야만 했다. 나는 머리를 반대로 돌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새어 나오는 눈물은 바닷물로 완전히 감춰버린 채.
크고 멋진 것 말고, 작고 유약한 나룻배 하나 정도로 멈춰있던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가는 길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때로는 부서지는 물살에 이내 돌아가야만 해도, 그 물살에 가고자 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떠내려간다 해도, 괜찮다. 어쩌면 고작 한 번이라는 게,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다.
노를 젓다가, 언젠가는 바다 위의 빼빼 마른 노인이 된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꿈의 바다를 떠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할 것만 같다.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지어줄 수 있다면, 그때야 기어코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제야 내가 따라온 작은 지도를 바람에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바다 위의 노인이 다시 꿈을 꾼다. 태국 야시장 거리, 예닐곱의 내가 아버지의 목마 위에서 한쪽 손에 풍선을 잡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밤하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고 없이 불어온 바람에 풍선을 놓친다. 그러자 꿈의 아이가 밝게 빛나 하늘을 날아오른다. 하늘로 떠나가 사라졌던 보물들을 모아, 형형색색의 보름달을 만든다.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을 회상한다. 치지직, 텔레비전의 전원이 아직 밝게 켜져있나 보다. 하늘로 떠난 목마의 어깨가 화면에 오롯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