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후계자 간 다툼은 2015년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났다. 신격호 회장은 당시 이미 80대 후반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었다. 그룹 내 실권은 없었지만 지분율이 높았던 장남 신동주, 실세였던 차남 신동빈. 당시를 전후로 한 수년 동안 롯데 신씨 일가의 관심은 누가 그룹을 이어받게 될 것인가에 주로 쏠려 있었다.
점점 그룹을 장악해가던 신동빈 회장은 돌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여파에 휘말려 2018년 초 구속되고 만다. 후계자의 난에 이어 사법 리스크까지 번지자 롯데 경영진들은 우왕좌왕했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네이버와 쿠팡이 이커머스 분야에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변화를 빠르게 쫓았던 라이벌 신세계 이마트는 이커머스로의 전환에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한국 1위 유통 거물이었던 롯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실기하고 말았다. 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허비해버린 롯데는 지금 그룹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삼성 이야기를 하는데 왜 롯데 사례를 꺼내냐고? 삼성 오너가는 훨씬 더 길고도 깊은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삼성 서초사옥
이재용 부회장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그가 1991년 삼성에 입사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이 행해지는지 아닌지에 수많은 언론과 시민단체, 정부, 국회의 눈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부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결국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똑같이 휘말린 삼성가 역시 이 부회장의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게이트가 시작된 2017년부터 이 부회장이 재구속된 올해 초까지 4년 간, 삼성 최고경영진의 관심은 그의 감옥행을 막는데 대부분 쏠려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것도 이때였다. 총수 일가 불법 행위를 지휘하는 곳이 미래전략실이라는 일각의 과격한 주장마저도 삼성은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산 800조 규모의 글로벌 대기업을 이끄는 헤드가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냐고? 삼성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미래 사업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반도체 시장이 파운드리 쪽으로 급격한 전환을 맞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대응은 한발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분야의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모바일 부문 시장 점유율도 갈수록 하락세다. 10여 년 전부터 미래사업으로 점찍은 제약 바이오 분야(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강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SK나 셀트리온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에게 추격의 기회를 허용하고 말았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부회장의 승계와 관련되면서 분식 회계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이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 앞으로도 이 부회장의 경영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 미래 핵심 사업으로 꼽았던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 미래 전략을 그리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너 리스크가 그룹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례는 또 있다. 한진그룹이 대표적이다. 오너가 장녀인 조현아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이것으로 시작된 한진그룹의 위기는 조양호 회장 사망으로까지 이어졌다. 경영권을 놓고 다투던 후계자들은 각자 외부세력들을 끌어들여 지금도 지분율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결국 파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이어진 오너(조 회장의 제수 최은영 회장)의 경영 실패, 다시 경영권을 이어받은 총수 일가의 실기로 결국 기업이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