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욱 Aug 26. 2020

소통, 존재를 확인하다.

소통에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



 나는 좋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다.

'남들은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며 좋아요 버튼 한번 남겨주고 가는 거겠지

그냥 예의상 들어주는 척하는 거겠지


왜 그런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소통의 부재에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취향과 나의 언어적인 부족함, 설득력 부재 등 많을 것이다.


생각하며 고민하다  존재라는 주제에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좋은 정보를 나눠도 나의 생각을 어필해도 안된다면 그것은 내 존재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내 존재 자체가 설득력이 있는 존재였다면 누구든 내 말을 들으려 했을 것이다. 내 말의 핵심뿐 아니라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 까지도 깊이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마치 빌 게이츠의 일생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문장도 빠짐없이 다 이해하고 들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 검사의 부정함을 폭로하는 탄원서를 대검찰청에 10번을 넘게 보낸 적이 있었다. 여러 번 검토했고 법적으로 부정함과 물증을 이야기 했지만 민간인으로서 영향력이 없었다.
검찰 내 감사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부정한 검사가 개인적인 사과를 하는 것에 그치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과연 검찰 내 비교적 고위관리가가 이 사항들을 지적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소통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내 존재는 남에게 아직 설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주변 지인과 친구 선후배의 모든 관계에서 내 얘기는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내가 소통하고 싶은 목적도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소통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상대방은 소통에서 앞서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나는 아직 부족한 존재이면서 글과 말로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존재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면의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 등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바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그에 앞서 좀 먹먹해진다.

소통하기 전에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서 한다는 그 팩트와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인정받으려 했던 나 자신이


하지만 이걸 깨달은 나는  의식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존중해야하며 

내 자신의 존재도 스스로 존중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함을 알며 나아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허함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