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
나는 좋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다.
'남들은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며 좋아요 버튼 한번 남겨주고 가는 거겠지
그냥 예의상 들어주는 척하는 거겠지
왜 그런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소통의 부재에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취향과 나의 언어적인 부족함, 설득력 부재 등 많을 것이다.
생각하며 고민하다 존재라는 주제에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좋은 정보를 나눠도 나의 생각을 어필해도 안된다면 그것은 내 존재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내 존재 자체가 설득력이 있는 존재였다면 누구든 내 말을 들으려 했을 것이다. 내 말의 핵심뿐 아니라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 까지도 깊이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마치 빌 게이츠의 일생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문장도 빠짐없이 다 이해하고 들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 검사의 부정함을 폭로하는 탄원서를 대검찰청에 10번을 넘게 보낸 적이 있었다. 여러 번 검토했고 법적으로 부정함과 물증을 이야기 했지만 민간인으로서 영향력이 없었다.
검찰 내 감사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부정한 검사가 개인적인 사과를 하는 것에 그치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과연 검찰 내 비교적 고위관리가가 이 사항들을 지적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소통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내 존재는 남에게 아직 설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주변 지인과 친구 선후배의 모든 관계에서 내 얘기는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내가 소통하고 싶은 목적도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소통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존재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면의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 등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바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그에 앞서 좀 먹먹해진다.
소통하기 전에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서 한다는 그 팩트와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인정받으려 했던 나 자신이
하지만 이걸 깨달은 나는 의식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존중해야하며
내 자신의 존재도 스스로 존중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함을 알며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