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에 대한 예언

by 우성


스물여덟 살 때였나? 한창 내 주변 사람들이 아파트 문제로 떠들썩했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생각될 때였다. 어서 빨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내 명의로 된 아파트를 가지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알고 봤더니 나라 전체가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지금 당장 대출을 받아서라도 사야 하는 그 집이 꼭 아파트여야 하느냐고. 단독 주택에 살아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같이 이야기하던 누군가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만 집이야.”



그 당시에는 몰랐었다. 그 말의 의미를. 아직도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것이 재테크의 수단이라는 걸 몰랐고, 집이라는 불리는 것들 중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를 몰랐다.


사장님이 대출을 받아서 샀던 아파트의 가격이 일주일 만에 사천만원이 올랐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와이프가 복덩이라는 말도 했다.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이었다.


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보증금 이백만원에 월세 이십만 원짜리 원룸에 살고 있었지만 아파트에 대한 관심도, 그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왜들 그렇게 아파트, 아파트,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체적인 이유보다는 그냥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수중에 돈이 있거나 대출을 받을 여력이 됐어도 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그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각이 아니라 예감이 든 건지도 모르지만.



‘별일’ 이 없으면 예정대로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하려던 계획이 순식간에 틀어지게 된 것이다.




워낙 오래 전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아마 몇 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경기 악화로 갑작스런 실업자가 속출했다. 도산하는 사업체들도 많았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별일’ 이 없으면 예정대로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하려던 계획이 순식간에 틀어지게 된 것이다. 대출 원금은 커녕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들게 된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고 집을 팔아서 그것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무리하게 대출까지 해서 사두었던 아파트의 가격이 폭락을 해버렸다.


내 집 마련을 위한 건전한 목적이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다시 되팔아서 시세 차익을 챙기려는 불건전한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정부의 시책을 믿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거리에 나앉게 되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거리에 나 앉는다는 건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급속도로 악화된 가계부를 써야하는 가정들 상당수에는 불화가 끼어들었고, 그건 보통 이혼으로 이어졌다.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했던 가정에는 불행과 우울함, 잦은 다툼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끼어들었다.




월 소득이 적게는 백오십 만원에서 많아봐야 이백 만원 언저리인.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우스 푸어 조차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정책 계획을 잘못한 정부? 아니면 일단 사고 보자며 무턱대고 덤벼든 국민들?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한 기업들? 묻지마 식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해주다가 상황이 급변하자 악착같이 빚 독촉을 해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절망에 빠트린 은행들?


사회 전반에 우울함이 깃드는 것을 보면서 한편 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사태를 예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2016년.


그런 예상을 한지 십년 정도가 지났지만 변한 건 별로 없다. 그때처럼 하우스푸어에 대한 기사가 이슈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하긴 요새는 그것 말고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너무 많다.


저금리로 인해 전세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월세나 반 전세는 점점 늘어난다. 그런저런 이유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려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대출을 할 여건도 안 되는 사람은 엄청나게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출퇴근 지옥인 지방으로 빠진다. 어떻게든 도시에 자리 잡은 사람은 전세자금을 추가로 대출받고 그것도 아니면 월급의 사분의 일을 주거비로 지출한다. 보통 사람들 이야기다. 월 소득이 적게는 백오십 만원에서 많아봐야 이백 만원 언저리인.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우스 푸어 조차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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