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의 액정이 깨졌다. 뭐 그냥 떨어뜨렸나 보다하고 말았는데 액정이 깨진 걸로 모자라 터치 패널이 망가진 모양이었다. 아직 이년 약정 중에 반년 정도가 남았는데.
핸드폰 약정의 노예로 오랫동안 살아온 난, 지금 사용하는 통신사 말고도 나머지 두개의 통신사에 체납 상태다. 그것도 약정의 결과이자 대리점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핑계 같지만.
출근 시간에 깨진 터라 급한 마음에 근처에 있는 대리점을 찾았다. 생각보다 저렴한 단말기도 있었으나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어떤 좋은 조건도 허용이 되질 않았다. 또 고민했다.
확실히 현대인은 스마트 폰의 노예, 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폰을 잠깐 사용하지 못할 뿐인데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난 다른 사람과 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딱 하루를 참았다. 그리고 다음날 집 근처에 있는 선불 폰을 취급하는 대리점을 찾았다. 선불요금이라는 개념의 폰을 예전부터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비싼 요금제를 가입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날 알아본 액정 수리비는 십오 만원이 예상되는 상태여서 수리하기에도 부담이 너무 컸다. 대충 알아보니 선불 폰은 단말기가 오만 원 정도에 선불금 삼만 원 정도면 해결이 가능할 듯 싶었다. 쓰던 번호를 당분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한두 달만 참으면 되리라 생각했다. 난 어차피 평소 통화량도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막상 가본 선불 폰 대리점의 단말기는 예상대로였으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너무 구형 스마트 폰이다 보니까 조금 꺼림칙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전화만 되는 폰으로 살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난 집에 있는 구닥다리 노트북보다는 좀 더 빠른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뱅킹이나 기타 다른 업무를 보는 게 많았기에 스마트 폰 자체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출시된 지 한 이삼년은 된 구형 스마트 폰 단말기를 선택했다. 예상했던 오만 원을 지불하고.
문제는 셋팅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차피 일하는 곳에선 폰을 거의 쓸 일이 없었고 데이터 통화료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와서 정리할 생각이었다.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자주 사용하는 어플들을 다운로드하고 난후, 요즘 내 자취방 무선 인터넷에 이상한 사이트가 자꾸 접속하길래 비밀번호를 바꾸는 과정에서 와이파이 자체가 아주 먹통이 된 것이다.
세 시간을 넘게 매달렸지만 복구를 하지 못했다. 조금의 진전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 시간 반.. 집에 와서 글을 쓰려고 했던 황금 같은 시간이 날아 가버렸다. 머리까지 아파가면서. 세 시간 반을 헤매고 난 뒤의 결론은 그냥 낮에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아마 그러면 대강 정리는 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시간에 문서 작성을 제외하고 다른 프로그램은 잘 다루지도 못하면서 와이파이 복구를 하느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노트북 여기저기를 만진 게 너무 후회가 되었다. 결국은 이럴 거면서.
오늘 선불 폰을 개통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통한 가격에 그만큼만 더 얹었으면 깔끔하게 수리를 했을 텐데. 그러면 별 불편함 없이 이전과 똑같을 텐데. 새로운 상황이 좋은 자극제가 될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이러면 싸이클이 뒤틀려 버린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전반적으로 하루 일과에 지장을 주게 된다.
문득 생각해보니 사설 수리 업체도 있을 것 같았다. 알아보니 있었다. 거긴 팔만 원 정도면 될 것도 같은데. 결국 그 돈을 주고 수리를 하면 정식 대리점 수리 가격인 십오만 원이나 그게 그거다. 좀 더 신중하지 못하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정의 노예에서 풀려나오려는 몸부림이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 절반의 성공에 그쳤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안에서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우습다. 발버둥을 아무리 쳐도 그 안에서만 헤엄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내 모습이.
날이 밝고 어느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에 난 아마 사설 수리 업체를 알아볼 것이고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 와이파이에 스팸성 사이트가 접속하는 문제점과 무선 인터넷이 먹통인 점을 해결하겠지. 그러느라고 출근 전 귀한 시간을 또 전화통을 붙들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