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기질

by 우성


세상에 개미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배짱이도 있어야 그럴싸한 우화도 탄생하는 법이다.




난 한곳에 오래 붙어 있지를 못하는 편이다. 회사를 다니건 아르바이트를 하건 항상 그랬다. 가장 오래 다닌 곳이 이년이었으니. 그 이년도 일 년 만에 관두고 나올 뻔 한 것을 같이 일하던 사람이 나를 좋게 본 덕분에 쉴 만큼 쉬다가 다시 복귀하라고 해서 겨우 겨우 일 년을 더 일한 케이스였다. 그곳 말고는 길어야 일 년, 짧으면 육 개월, 삼 개월, 두 달, 혹은 며칠만 하다가 도망쳐 나온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어떤 곳은 지겨워져서 관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 말고는 못 견디게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아서,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해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불합리한 업무속성 때문에,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들이었다.




내가 이런 내 고칠 수 없는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 건 서른하고도 몇 살을 더 먹고 난후였다. 알고 나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 차라리 속은 편해졌다.





내가 끈기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위의 이유들이 그럴싸하지만 실은 끈기 없음과 통하는 것들이다. 끈기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버티게 마련이니까. 하긴 어떻게든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표심도 딱히 없었다. 그저 돈을 벌만한 일을 찾아다닌 것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여태까지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은 글쓰기였다. 서른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불현듯 깨닫게 된 내 운명이었다.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 이 일이라면 평생 싫증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몸에 문학가, 예술가로서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게 된 후, 난 내 끈기 없음을 다시 한 번 합리화했다. 그때부터 묘하게 내 현실과 겹치면서 나이 생각하라, 는 류의 말을 많이 듣게 됐고, 난 몇 번을 이야기하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걸 확인할 시점에 대화 자체를 포기하고 적당히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말없이 일을 안 나갔던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된 듯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해보면 참다 참다 못 견디고 폭발한 결과였기에 또 한 번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죽도록 나가기 싫은걸 어떻게 하냐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이기에 이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기에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 개미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배짱이도 있어야 그럴싸한 우화도 탄생하는 법이다.

그래서 난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주변 사람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그럴수록 주변의 사람들도 없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한다. 운명? 그러면 평생 그렇게 살 거냐는 물음에도 난 이렇게 대답한다.




“평생 이럴 리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 그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이런 내 말을 들은 사람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인생에 무책임하고 한심한 선택이라는 듯이.


난 고등학교만 나왔다. 글을 쓰는 것과는 관련이 있는 공부라고는 아카데미를 일 년 남짓 다녀본 게 전부다. 그곳 역시 최종반 합격에 탈락은 했지만, 내심은 창작력을 틀에 맞추는 곳이라 생각해서였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내 주변에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곳저곳 자주 옮겨 다니긴 했지만 한 업종에서 꽤 오랜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지금껏 아는 사람도 그쪽 업계 사람들뿐이다. 글 쓰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주변에 그런 사람들밖에 없다 보니 예술가로서의 내 기질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래서 때로는 외롭다.



난 철새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난 이런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그런 기질을 갖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땅 위 대다수 사람들처럼 대출금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게 됐을 테니까. 뭐 그런 사람들의 삶이 의미 없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마다 각자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시스템의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