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페이지 /투덜투덜 뉴욕, 뚜벅뚜벅 뉴욕-5

진보는 꼭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하나

by 우성



극도의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약자인 하급자에게 화풀이하는 현실, 이런 조직을 만든 사람은 그들이 아니므로, 이들 모두가 희생자다. 이런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괴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자들 간의 잔혹성은 바로 강자들이 평소 그들에게 가르쳐준 것들이었다... 괴물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이 국가와 사회다.


하급병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다가 결국 집단 구타해 죽게 한 사병들을 두고 한 진보논객이 쓴‘누가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나?’라는 칼럼의 마지막 대목이다. 일부 진보 논객들이 이렇게 말할 줄 알았고, 나는 이런 류의 분석이 참 싫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걸 계기로 구조적이고 더 큰 문제점을 살펴보자는 것이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늘 이런 식으로 모든 걸 구조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그 편리한 글쓰기 양식이 난 게을러 보인다. 부대원 수십 명을 쏴 죽여도 구조의 문제고, 자살을 해도 구조의 문제고, 구타를 해도 구조의 문제다. 15살 또래를 집단 구타하고 암매장한 10대들도 모두 구조의 문제고 사회의 희생양이다.




나도 소총수로 27개월간 군대에 다녀왔다.

아침에 눈뜨면 졸병부터 패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도 있었고,

태권도가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쪼다 같은 동기도 있었다.

이런 류의 인간들은 사회 나가서도 누구를 해할 놈들이고,

곱게 제대해도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자살할 인간들이다.

같은 공간에서 3년을 보내도 대부분은 정상적인 인간으로 생활한다.

어떻게 이병장 같은 놈이 구조의 희생자인가?

그렇게 치면 가정폭력을 겪은 이들이 태반인 세상의 모든 연쇄살인범, 연쇄강간범은 다 희생자고 피해자다.




예전에 한 해경이 중국의 불법 조업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죽었을 때 참여연대는 이런 식의 코멘트를 했다. ‘적극적 총기사용이나 군함 동원 등의 대응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고 감정적 대응보다는 중극 측과 협력체계를 갖추고 처벌 수위를 높이며 어획물을 전량 몰수하는 등의 조치를 마련해야한다.’ 생때같은 대한민국 청년이 해적한테 죽었는데 어획물 몰수가 대수인가? 반면 내가 정말 싫어하는 단체인 자유 총연맹은 강력대응을 촉구하는 거리시위를 했다. 내 땅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우리 경찰까지 죽이는 놈들에게 왜 총기 사용을 하면 안 되는데? 그게 국민정서에 맞는 행동이다. 진보단체 회원들이 다 똑똑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건 알겠는데 운동을 하는 단체라면 입바른 소리는 나중에 하더라도 사람들과 교감을 할 때는 확실히 교감해야 한다. 영화 <공공의적2>에서 검사로 나온 설경구의 대사. 조폭 퇴치하러 출동하기 전 형사들 앞에서



“각목까지는 몸으로 막아주십쇼. 사시미 이상 연장 나오면 총기 사용 허락합니다. 언제까지 나쁜 놈들 인권 지켜줄려고 우리 경찰이 칼 맞아야 합니까?” 이게 맞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중국에서 불법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권유린에 관한 사건이라면 진보매체가 더 게거품 물고 진상조사 요구하고 사설로 때려야할 일 아닌가? 주차문제로 주한미군 헌병이 시민에게 수갑을 채웠을 때 한겨레가 얼마나 난리를 쳤나? 이문제가 그 사건보다 덜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조선일보가 크게 쓰니까 일부러 안 쓰는 것인지 참 조용했다. 아니면 당사자가 북한 인권 운동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한민국 보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 외교관계에서 비겁한건 그러려니 치더라도 왜 진보인사들은 미국에 관한 건 거품을 물면서도 중국, 북한과 관련된 일은 그리 점잖은지 이해가 안 간다.



‘그래, 내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야. 그런데 이걸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달라.’



문명사회는 어떤 경우라도 개인적인 보복을 금지하고 처벌한다. 자기 딸을 강간한 놈을 죽이면 아빠는 살인죄로 감옥에 가야한다. 그래서 법이 엄중하고 공정해야한다. 변호사 선임 잘하면 죽일 놈도 ‘메롱’하고 빠져나오는 시스템에서 피해자 가족의 분노는 어떻게 보상하나? 언론과 논객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공분을 일으키는 사안에 대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뻥 틔워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가장 신랄하고 강한 어조로, 가장 속 시원한 문장으로, 정말 죽일 놈이 나왔을 때, 그래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글을 읽으면서 ‘그래, 내가 생각한 게 바로 이거야. 그런데 이걸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달라.’ 이렇게 해주는 역할도 있어야 한다. 없는 건 아니지만 늘 이런 식으로 눙치는 진보논객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일단 죽일 놈은 확실히 욕해놓고 나서, 그러고 나서 공자왈 맹자왈을 하건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해도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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