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음주를 기대하며
LA 공항에서 뉴욕 행 비행기에 막 탑승하기 직전, 딸에게 줄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기념품점으로 달려가서 보니 ‘할리우드’라고 새겨진 기타 모양의 장식물이 있어서 샀다. 선물을 받은 세린이가 “아빠, 그런데 이거 뭐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맥주 병따개였다. 와이프는 어이없다는 얼굴이다. “왜, 애한테 맥주병 까라고?” 난 맹세코 진짜 오프너인 줄 몰랐다. 여하간 성능시험 삼아 맥주 한 병 따 보라고 했더니 딸이 신나서 따준다.
아들이 없는 나는 소원 하나가 나중에 딸이 크면 같이 여기저기 맛 집을 돌아다니며 대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술 마실 때까지 크기엔 너무 멀었잖아? 그래서 예전부터 집에서 술을 마실 때 애한테 술을 따르게 했다. 그랬더니 이제 막걸리를 마실 땐 자기가 알아서 따르기 전에 흔드는 수준이다. 한 번은 고등학교 선배 집에서 가족모임을 하는데 어른들이 술 마시는 걸 보고 또래 아이들과 놀고 있던 딸애가 쪼르르 와서는 내 잔에 한잔을 따랐다. 선배들은 ‘허허’ 하고 벙찐 표정이고, 형수들 중 일부는 ‘뭐 이런 개념 없는 아빠가 다 있어’ 라며 불쾌한 표정이다.
내가 정말 나쁜 아빠인가요? 나는 정말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역시 기집이 따라야 맛이지, 우하하’라는 식의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러 우리 아이가 나중에 남자 놈 들하고 대작하면 한둘은 그냥 보내버릴 정도로 술을 잘 마시길 바랄 뿐, 그러면서 술버릇이 아주 깨끗한 사람이길 바랄 뿐, 그리고 이 녀석이 태어나서 처음 마시는 술의 첫 잔은, 와인이건 맥주건 소주건, 꼭 내가 따라주고 싶은 것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