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회 청룡 영화상
김민희의 여우 주연상 수상을 보고 드는 생각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결과를 낳아 버렸다.
‘과연 배우는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게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이번 수상에서 말도 많았고, 그래서 결과가 확정됐을때 누군가의 입에서는 감탄도 나오게 만들었을 법한 여우 주연상 시상 결과 때문이었다.
난 ‘죽여주는 여자’의 윤여정이 이변이 없는한 이번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고 심사위원의 채점표를 본후 윤여정은 단 한표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래, 뭐 이 정도야 취향 차이이고, 단순한 영화팬과 전문가들의 ‘보는 눈’차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굳이 김민희여야 했을까?
난 덕혜옹주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손예진이라는 배우는 연기력으로는 딱히 논할 거리가 없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항상 어느 작품에서건 안정적인 수준급의 연기를 펼쳐왔다. 그래서 손예진이 수상했다 하더라도 별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한예리나 김혜수가 수상을 했더라도, 약간 갸웃거리기는 했을 지언정 이 정도의 반감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청룡 영화제는 항상 파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조금 아쉽기는 하다. 윤여정이 수상하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
김민희의 수상을 두고 말이 많은 이유는 단 한가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이유다.
청룡 영화상, 분명히 국내 최고의 영화제다. 다른 영화상 시상식과는 그 무게감이 남 다르다. 영화인들은 모두가 인정하고 받는 사람도 의미가 남다른 그런 시상식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영화제라는걸 주최자도 심사를 하는 사람들도 너무 잘 알았을텐데,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배우를 굳이 선정해야 했을까. 물론 도덕성에 있어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병헌도 완전히 자유로울수 없다. 그러나 이병헌과 김민희가 저지른짓은 ‘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수상 결과를 보도한 한 기사의 댓글에 이런게 있었다.
‘연기만 잘하면 사생활 따위는 상관없다고? 공부만 잘하면 같은 반 친구들 괴롭혀도 상관없다는 거랑 비슷하네.'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비유를 기가 막히게 한것 같다.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었다.
‘굳이 김민희를 줘야 했을까. 다른 배우도 잘했는데.. 애가 보고 배울까 두렵다. 아이 키우는 아빠로서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연예인도 사람이니 잘못을 할수 있다. 그게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일일수도 있다.
이번 일이 그 와중에 나를 거슬리게 한건, 김민희가 저지른 이번 짓으로 인해서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인사의 가족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참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논리적이기도 하다. 김민희에게도 로맨스였을지 모르겠으나, 그리고 같은 일을 하는 그 바닥에서는 어떻게 평가했을지 모르겠으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 대중의 입장에게는 논할 가치도 없는 불륜이었다. 그런 짓을, 한동안 떠들썩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의 당당하게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에 이병헌의 스캔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 사건의 결과 유무에도 불구하고 이병헌이 번듯하게 재기를 한다면, 한국 영화판의 상황도 헐리웃과 비슷하게 갈것이라고. 불길한 예감이었던 셈이다.
난 김민희를 좋아했었다.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다.
‘뜨거운 것이 좋아’부터 눈여겨 보다가 ‘화차’에서의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성장을 본후, 이 배우도 더 이상 연기력으로 논할 배우의 레벨은 벗어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번 ‘아가씨’에서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건 인정한다. 그래서 다른 시상식에서 수상했을때는 솔직히 별로 반감이 없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청룡 영화제는 대중에게 보다 많이 오픈돼있다. 파급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영화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 않나.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그럴수도 있다.
감수성이 남다른 예술가들이니 그럴수도 있지 않겠나.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딱 한가지 지점에서 내 생각은 바뀐다.
그럴수도 있지만, 그 일로 인해서 또 한번 상처 받을 사람의 아픈 가슴은 누가 어루만져 줄건가. 그들은 아마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판마저 요새 유행어인 ‘헬조선’화 돼가고 있는 건 아닌지,라고.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무시하고 오로지 실력만 있으면 된다, 라고 말하는건 약 십년전 MB를 대통령을 뽑았을때, 그때와 똑같은 전철을 다시 한번 밟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 결과는 어떤가? 이글을 읽는 사람은 비약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영화 ‘올드보이'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모래알이든 바위든 물에 가라앉는건 마찬가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절대 변치 말아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다.
이번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는 그런 것들 중 한가지를 어긴 배우가 된 셈이다.
"우리 감독들은 여전히 김민희를 사랑하고 지지한다."
한 시상식에서 어떤 감독이 했던 말이다. 감독이 아닌 그냥 관계자였던가? 참 생각없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참, 그러고 보니 김민희는 아직 그럴듯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