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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성 Feb 17. 2017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든 생각 몇 가지



이런 사회 문제, 억울한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말도 안 되는 열악한 상황에서의 죽음을 다룬, 뉴스에나 나오는 이슈를 다룬 글은 쓰지 않으려 했다.


우선 하나 하나 신경 쓰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현실적인 사안에 대한 글을 쓰기에는 좀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몇 가지 뉴스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세상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티도 나지 않는 한명, 한명의 생각과 글이, 혹시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을 당장 바꾸는 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글을 보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의식의 변화라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뭔가 긍정적인 변화라도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티도 안날만큼 아주 작을지라도 말이다.


작년인가, 그것도 넘은 이년 전인가? 벌써 수많은 다른 사건들에 묻혀 지나간 일이 돼 버리고 잊혀진..

구의역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 대한 기사를 접한 그날, 포털 사이트의 한 코너에서 조선소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보기도 했다. 두 케이스 모두 피해자들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흔히 ‘숙식 노가다’ 라고 불리는 건설현장에 일을 하러 가본 적이 있다. 


두 곳을 가봤었는데 사정은 현장 따라 달랐다. 상대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일이 그리 힘들지도 많이 위험하지 않은 현장도 있었고, 반대로 더럽고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힘들고, 좀 위험한 고소 작업을 많이 하는 현장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일을 하러 갔던 곳, 우리처럼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공수’ 로 일당이 계산되는 일용직들이었다. 일당이 월급으로 계산되어 나오긴 하지만 분명한 ‘일당직’ 이다. 그리고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번 하청을 거쳐서 오는 것임이 분명했다. 아침 조회만 해도 두 번, 세 번씩 했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의 그곳 경험 중 한 곳은 가끔 꽤 위험해 보이는 고소작업도 했었다.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한명은 밑에서 사다리를 잡아주거나 그게 없을 때는 안전 고리를 걸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백퍼센트 적용이 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런 큰 공사 현장은 흔히 대기업에서 주관을 하고 여러 하청업체들에게 일감을 나눠주는 식이다. 일감을 따내기 위해 보통 하는 협상중 하나가 ‘단가’ 이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력을 충분히 쓸수 있게, 그리고 무리하지 않은 일정 속에서 짜여진 스케줄대로, 높은 분들이 자주 말하는 ‘메뉴얼’ 대로만 움직인다면 사고가 날 확률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그게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고.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돈’ 이다.


생각을 해보라. 누가 밤잠 못자고 일정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밤샘 작업을 하고 싶을 것이며, 다섯 명이서 할 일을 두 명, 세 명이서 누가 하고 싶어 하겠는가.

솔직히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대기업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가격을 후려치는 발주처들인지, 아니면 중간에 뒷돈을 빼돌리는 알선업자들인지, 그것도 아니면 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에라도 일을 따내려고 하는 하청업자들인지. 




다 알고 있는 문제이겠지만 생각의 전환이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할 부분인 것 같다. 

누구나에게 물어봐도 합리적인 가격, 

무리하지 않은 일정,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일을 주거나 따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엄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법률 제정 등.




예전에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국회의원이던 시절, 한 청문회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에게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건넨 한 기업인을 호통 치던 모습이 기억난다.


구의역 사고를 두고, 안철수 의원이 트위터 글 몇 줄 때문에 네티즌들에게 ‘혼’ 이 났다는 기사를 봤었다. 당시 그가 한 말의 속뜻이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참 타이밍도 나빴고, 어휘 선택도 부적절 했다고 생각한다. 한 네티즌의 말대로 그는 정말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어쩔 수 없이 그런 힘들고 험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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