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가능할까?
봄방학에 돌입하고 아이 유치원 졸업을 앞둔 2주여간, 여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남편은 바쁘다. 둘이서라도 어디든 가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마침 아이 유치원 친구엄마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터라 급작스럽게 제주도 3박 4일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 떠나기 일 주 전부터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사실 여행 가서 아이들이나 엄마와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혹여나 가기 전에 아프거나 열이 나기라도 해서 상대방에서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남편과 간다면 맘 편히 떠났을 텐데 괜스레 친하다지만 남이랑 같은 숙소를 쓰고 일정 내내 눈치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초보아닌 초보운전인 내가 제주도에서 무탈하게 운전을 해낼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근심덩어리였다. 결과적으로 남편 없이 하는 여자 넷의 여행은 너무나도 신나고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았다.
첫째로 운전을 번갈아 하니까 피로도가 덜했다. 남편이랑 갔다면 절대로 나에게 운전대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일정이 급할 땐 운전을 잘하는 상대방 언니가 느긋하게 움직여도 될 땐 내가 운전을 번갈아 하면서 서로 내비게이션이 되어 협력운전을 하였다. 게다가 여자들끼리 여행이라 경차를 빌린 터라 렌터카와 기름값을 합쳐 6만 원에 제주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는 것은 안 비밀. 그야말로 혜자 로운 가격이었다.
둘째, 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시간 가는지 모르고 몰두할 수 있다. 남편과 셋이 가면 사실 가족사진 셀카를 찍기에 번거로운 면도 있지만 아이들 위주로 사진을 마음껏 찍어주고 아이들도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우리를 찍어주기에 바쁘다. 어느 한 스폿이 마음에 들키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찰칵찰칵 소리 내기 바쁘다. 남편이었다면 답답함을 호소하며 공황장애가 올 것 같다며 흡연실을 찾아 나서길 바빴을 것이다.
셋째, 카페 데이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디저트라면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여자들 아닌가. 제주도 여행에서 인생 당근케이크를 접하고야 말았다. 당근을 싫어하는 아이도 당근케이크에 쉴 새 없이 포크질을 해댔다. 언제 먹을까 싶어 한 조각 포장해 와서 먹었지만 그마저도 아이들 입에 사이좋게 나눠먹으니 미처 한판을 테이크 아웃해오지 못한 게 후회에 사무칠 따름이었다. 여행 내내 아이들과 당근케이크 당근케이크 노래를 부르며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당근케이크이라며 고것 때문에 제주도 여행을 다시 오겠노라고. 나는 아이 친구의 핸드폰에 '당케이모'라고 친히 저장되었다. 남편이라면 싫어하는 당근케이크를 세 번 이상 입밖에 내는 것을 싫어했겠지.
넷째, 소품샵이라도 보이면 조르르 달려가 구경하기에 그야말로 천국이다. 아기자기한 한라봉과 동백 아이템들이 무수한 곳에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서로를 자제시켜주지 않는다. 하나같이 넋을 놓고는 바구니에 주워 담기 바쁘다. 계산대에서 6만 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호호호. 아쿠아리움 입장권 다음으로 비싼 여행 지불금액이었다. 하지만 기쁘다. 남편 있었으면 어림도 없을 금액이라며 명품가방이라도 쇼핑한 듯 즐거운 발걸음으로 나온다.
여행을 하는 동안 하루에 한 번은 꼬박 신랑에게 전화를 건다.
뭐해요?
뭐 하긴.. 혼자 있지(누가 혼자 있는 걸 모르나. 괜스레 불쌍한 척을 하신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으로 오는 여정도 즐거울 따름이다. 남편이 기어이 데리러 오겠다는 것을 극구 말린다. 남편을 보자마자 보고 싶었다며 혼자 지내면서 밥은 잘 챙겨 먹었냐고 안색은 왜 이리 안 좋아 보이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어본다. 아이도 여행 내내 아빠 찾지도 않고 하루하루 즐겁다는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아빠를 보자마자 다시 자석처럼 꼭 붙어있다. 역시 내 딸이다. 남편도 어쩌면 불쌍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에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야둥둥 남편 없이 떠난 여자 넷의 제주도 여행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