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날
지역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마침 신랑이 야유회에서 1박을 하고 오는터라 딸아이만 데리고 엄마아빠랑 지역축제 구경가기를 약속했다. 마침 친정집 근처에서 쭉 이어지는 축제길이라 어렵지 않게 축제 나들이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내심 딸아이 즉 손녀와 보내는 시간도 마련하고 싶었던 나의 소심한 욕심도 있었다. 최근 몇년간 아빠와 사이가 들쑥날쑥한 탓인지 손녀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는 아빠에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자리에서도 손이 가는 자기 자식만 챙기기 바쁘니 이해는 가면서도 딸아이에게는 친할아버지와의 관계와 비교했을때 너무 불균형적인것도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느때처럼 24시간 경비 근무를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멀리서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불렀지만 잘 들리지 않았는지 딸아이를 시켜 얼른 뛰어가보라고 하였다. 몇번의 외침 끝에 눈이 마주쳤고 반갑게도 아빠는 손녀를 번쩍 들어앉았다. 좋은 시작을 알리는 징표 같았다. 축제 부스를 이래저래 살펴보며 눈요기도 하고 요즘에는 붕어빵이 3마리에 2천원이라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걸음을 이어나갔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에 맞추어 생강청, 꿀 등을 시식하고 이야기 나누며 나는 무엇이든 원하면 바로 사줄 의향을 내비쳤다. 마치 부모가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사주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다 마다했지만 말이다. 지인분을 만나 식사권을 네개나 받아 맛난 식사도 했다.
9살 딸아이가 낚시 연을 갖고 싶어했다. 엄마가 잽싸게 계산을 해주어 언덕에서 연을 날렸다. 멀리서 그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세사람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연을 날리며 즐거워하는 모습, 연을 잡을듯 말듯 하면서 손녀와 놀아주는 모습, 사진에 찍힌 모습을 몇번이나 꺼내본다. 깡마른 체구에 혼탁하지만 강인한 눈빛. 만년 가장으로서 자식을 건사하는 우뚝 선 아버지다. 꺾이면 꺾였지 절대 휘지 않을 고집을 가진 그.
광활한 언덕에 연날리기 대회가 열린듯 무수히 많은 연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날은 흐리지만 바람이 강약을 조절하며 연날리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예고되었던 비는 정말 이 장면을 위해 한발 물러선 듯 했다. 건녀편에 한복패션쇼와 함께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은 아리랑으로 시작되어 왠지 모를 슬픈 노래처럼 연날리는 풍경과 어우러져 나는 몇초간 그 순간에 몰입되어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 우리 이렇게 좋은 거 함께 보고 즐기면서 살아가면 안될까? 자주는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 아빠가 거기 가는 대신 우리 이렇게 말이에요 세상에서 아빠가 믿는 그것 말고도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게 많다는걸 아빠도 알잖아요. 당장 믿음을 져버리긴 힘드니 우리 예전에 다녔던 성당에라도 간다면 2주에 한번씩은 내가 꼭 따라갈게요. 약속해요. 제발."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듯한 음악, 곡선을 날리며 휘날리는 연들을 보며 난생 모를 느낌에 휩싸였다.
그것은 행복, 사랑, 연민, 미안함 등이 소용돌이 처럼 뒤섞인 그런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