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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Jun 16. 2022

너는 어떨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얼마 전 아토가 잠에 들고 아내와 함께 요즘 '핫' 하다는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 안에 많은 에피소드 들 중에, 아직 젊은 회사원 아빠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 정도 된 딸의 갈등이 등장한다. 한창 보고 있던 중 한 장면에서 이제 막 회사에서 퇴근한 듯 양복을 빼 입은 아빠가 집에 가는 골목길을 지나는 딸과 마주치게 되는데 서로 얼굴을 확인 한 뒤 딸은 뚱한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그대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아빠는 그 모습에 실망한 듯 그 뒤를 터벅터벅 따라간다. 이상하리 만치 나에겐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특히 그 딸의 훨씬 더 어린 시절 모습이 폰 화면에 뜨는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그 속에선 활짝 웃고 아빠와 장난치며 애교 피우는 어린 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곧장 같이 보고 있던 아내에게 물어봤다. " 우리 아토도 사춘기가 오면 저런 느낌일까..??.." 아내는 가볍게 웃고는 대답이 없었다.


 요즘 너무 바쁜 회사일과 여러 일들이 겹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 한 달 남짓 아토는 '또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커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가장 큰 일은 이제 말을 '제법' 잘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걸 어느 정도 확실하게 요구하거나 표현해주려 하고 있다. 그로 인해 감정의 소통이 더 진해지고 개인적으로는 (이전에도 컸었지만) 더 큰 애착이 생기고 있다.


 요 며칠은 집도 이사하고 이제 막 처음 어린이집도 다니게 되어서 그런지, 편도염이 찾아와 밤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을 쿨럭쿨럭 해댔다. 아토가 이렇게 아플 땐 일절 먹을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온종일 굶으려 하는 게 마음에 걸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라도 하듯 아토는 요새 나를 자주 찾는다. 아내가 톡으로 '시간 될 때 영상 통화 좀 해줘, 아토가 아빠 틀어달래' 라며 얼마나 나를 찾고 있는지 시간 단위로 확인을 시켜준다거나, 집에 도착해서 '아빠 안아, 아빠랑 잘 꺼야, 아빠랑 먹을 거야, 아빠랑 할 거야' 하며 '엄마는 저리 가, 엄마 나가' 이렇게 아내가 해준다는 것에는 싫다고 반응한다거나 하는 등등.. 나에게 애정 표현하는 게 많아지면서 나랑 더 자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걸 많이 느낀다. 비교적 아내가 훨씬 많은 시간을 아토와 보내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많이 함께 해주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한창 이런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보니 그런지, 드라마속 사춘기 딸과 아빠의 모습에 내가 오버랩되며 알 수 없는 힘든 감정이 슬쩍 피어났다. 나는 과연 감당이 될까?


 물론 집집마다, 사람마다 상황은 달라진다. 나도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노력하겠지만, 일단 '통상적인 개념'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딸이 사춘기를 겪지 않고 오래도록 나와 하하호호 웃으며 친구같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아빠로서의 욕심이 생긴다. 최근 우리 쓰담이 가 병원에서 완벽하게 아들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사실 딸 둘을 원하긴 했었지만 오히려 저런 관점에선 아들이 아빠한텐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두어 달 후엔 가족이 늘고 집이 조금 더 시끌벅적 해질듯하다. 그만큼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기 때문에 현재 그렇게 아빠를 찾아대는 우리 이쁜 아토의 사춘기가 조금은 천천히 와주기를, 지금처럼 아빠 품에 꼭 안겨서 떨어지기 싫어하기를 조금 더 욕심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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