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된 기술, 경험의 빈곤

씨너스 : 죄인들에 대한 짧은 감상

by 보존과학자 C

아날로그 필름의 역사는 한 쪽으로 굴절된 역사다. 단일 민족의 역사를 오랫동안 공유해온 나로서는 백인의 피부색도-그나마는 자주 접할 기회가 많아 차이를 미미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흑인의 피부색도 모두 황인종이라는 익숙한 인종의 피부색이 가지는 다양성을 인식하는 만큼 그들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어찌 보면 굴절된 역사로부터 불거진 기술의 편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흑인의 다양한 피부색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빛깔로, 제 나름의 깊이와 온도로 영화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비록 인물을 감싸고 있는 배경과 장면이 어둡긴 하더라도, 인물의 뒤편에 서 있는 새까만 자동차의 디테일이 완전히 날라갈 만큼 어둡더라도 그들의 피부색만큼은 각자의 빛으로 드러나고 있었다는 것. 이렇게 다양한 흑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본 적은 있어도, 각자의 피부색이 이렇게 다양한 색상으로 빛나고 있음을 눈과 경험으로 받아들인 것은 처음이다. (이해의 영역과 경험의 영역은 다르다. 당신이 이해한다고 말할 때 당신은 오히려 하나의 현상을 이해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말은 당신의 인식을 방해할 뿐이다.)

필름의 역사는, 사진이 그 대상으로 삼아온 인종과 계급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셜리카드'라 불리는 사진 현상을 위한 레퍼런스는 '옳은 사진 현상의 결과물'을 위해 1950년대에 코닥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1990년대에서야 비로소 백인/황인/흑인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사진에서 어두운 색상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들은 가구 제작 기업과 초콜릿 제작 기업 등, 어두운 색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던 (아마도) 백인들이다. 흑인들은 그때까지도 제대로된 피사체로서, 사진의 재현 대상으로서 취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영화 산업에서는 백인의 피부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촬영과 조명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그 기법은 오직 얇고 밝은 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기술은 굴절된 채, 편향된 방식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과 함께 '시네마Cinema'가 등장한 1896년이래로 열차는 거의 100년을 넘게 달려서야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된 셈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그들이 억압된 집단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계에 대한 당신의 경험이 아직 그만큼 확장되지 않은 것이고, 경험의 부재는 때로 당신의 능력 범위 바깥에서, 마치 주어진 환경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지엽적이고 특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과, 기술이 재현하는 세계와, 그 재현된 세계에서만 머무는 사람들이 겪는 경험의 빈곤에 대한 이야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구자의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