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관찰일기

당신의 서른은 어떤가요?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

by 심효진

서현진 아나운서의 책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을 읽고 있다.
뿅갹이를 재우고 반신욕을 하는 짬짬이 읽고 있다보니 진도가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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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른'에 관련한 책을 집어들게 된건 8할이 엄마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20대에 여자 나이 크리스마스케익과 같다는 개소리들을 일찍부터 듣고 분개하고 고민했기 때문일까.
나는 나이들수록 풍겨나오는 관록의 매력이 기대되고 나의 미래가 반짝거릴거라고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철없는 서른의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서른 전에 결혼과 출산을 해서 아마 별다른 느낌이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엄마에게 서른은 정말 가혹했단다.
치열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이뤄놓은 건 너무 없고 내 곁에는 남편도 아이도 없었지."


평소 자기계발서가 다 뼌하디 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수많은 '서른'에 관한 책들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었다.
그런데 우연히 서현진 아나운서의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왠지 궁금해졌다.
내 기억 속에 서현진 아나운서는 소위 '아나테이너'라고 불리는 예능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아나운서들의 홍수 속에서
예쁘긴하지만 예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에는 끼가 좀 부족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소갯말이 마음에 들었고 혹시라도 서른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의 단서라고 건질 수 있을까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서른에 조차 별생각없이 세상 다 아는 애어른인척 하고 있는 내 안의 꼬마를 일깨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함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욜~ 서현진 아나운서 상당하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무용과를 나와 몸매도 길쭉길쭉 미스코리아 출신이라 미모도 자타공인 인정받은 그녀가 만정적인 지루성 두피염에 시달리며 꼴같지도 않은 어장관리남에 당해 밤마다 하겐다즈 파인트를 한 통씩 비워내느라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도드라진다니.
자꾸만 휑해지는 정수리 머리숱에 한숨을 쉬며 거울을 들여다보는 그녀라니 정말 내가 가졌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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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런 외모적인 고민을 가진 것 뿐아니라 앞으로도 방송계에서 살아남아야할 사람이 그 업계의 부조리한 측면을 책을 통해 꽤 드러내었다. 그 중에는 여자아나운서로서의 업계의 현싱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이런 고민들이 내가 아이를 낳고 주변의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자로서의 장벽을 느끼는 부분과 매우 유사하다.


국민이 매일 저녁보는 9시 뉴스에는 50대 남자 아나운서와 20대 여자 아나운서의 그림이 익숙하다. 아버지와 딸뻘인 그들의 조합에 남자 아나운서는 진하게 우려낸 사골같은 관록넘치는 앵커멘트를 뽑아낼 수 있지만 20대 중반의 사회초년생 여자 아나운서에게는 뉴스전반에 대한 이해조차 겨우겨우 해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40대가 되어 이제 뒷방늙은이 신세취급을 당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은 지금 자신에게 다시 9시 뉴스데스크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며 그 때보다는 훨씬 더 깊이있는 시각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볼멘소리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시청자인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너무 숨이 턱에 닿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좀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커리어 우먼의 현실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달려야한다. 씁쓸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게 현실이다.



게다가 다수의 시청자들이 그리고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이 '여자'아나운서에게 원하는 건 사회를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아닌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섹시한 몸매가 주는 상큼함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해 남자들의 사업이야기에 옆에서 술따르는 룸싸롱의 여자정도의 수준이 여자들이 해야할 도리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예능계는 무엇이 다른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몇안되는 중견여자개그맨인 박미선씨는 지난 몇년간 해피투게더의 보조MC역할을 그만두어야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아 그녀마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여자가 잘나가는 꼴을 못보는 사회다. 송은이와 김숙이 마이너한 플랫폼에서 겨우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바쁘게 이곳저곳 얼굴 비추면서 활동하면 서현진 아나운서가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티비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20대에 미스코리아와 아나운서시험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뤄냈고 몸을 세개로 나눠도 모자를 만큼 반짝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 때의 그녀는 '서른'의 나이를 걱정하는 선배들의 고민거리는 그냥 시간많은 자들의 한숨정도로 여겨졌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낸 그녀가 어느 순간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잘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잘나갔던 본인조차 '젊음'이라는 시간이 주는 한 때의 무기를 가졌던 한낱 부속품이었음을 깨닫고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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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진 아나운서는 2012년 UC버클리에서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했다.


나는 그리 유명세를 떨치는 20대를 보낸 것도 아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나 턱없이 부족한 준비로 내 길이 아님을 느끼고 돌아섰고 그 흔한 직장인이 되어보았지만 그 곳에서도 20대의 사회인으로 덜다듬어진 여자 신입사원으로 성추행을 비롯한 온갖 수모를 겪다가 지금은 주부가 되어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해 3년간 익명의 게시판에 연재도 해보았다. 인기를 끌어서 기분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악플도 좀 받으면서 내가 그렇게 욕심이 많고 막말하는 부족한 인간이었나 싶기도 했다.
현재는 주부라는 직업에 안주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내면의 어딘가에선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을 하고자하는 꿈틀거림이 없을리 없다. 하지만 사회전반에 팽배해있는 남성중심적인 시작에 내안의 퐈이터가 자꾸만 발동이 걸리려한다. 때로는 이꼴저꼴보기 싫어서 그냥 내 애만 키우면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직 서현진 아나운서의 책을 다 읽지 않았다. 그녀가 유학을 결심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반신욕시간에 물에 적당히 불려가며 대애충 읽기엔 너무도 내가 하는 말같은 부분이 많다. 조금 더 각잡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서른을 이미 넘긴 지금 이제서야 서른 그리고 삼십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 나는 궁금하다.






당신의 서른은 어떤 가요 혹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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