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 썼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성적이 잘나올 생각만 했지 내가 무얼 좋아하며 어떤 진로를 정하면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에도 네임밸류가 높은 대학에 들어갈 생각만 했지 그에 비하면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는 아주 작은 고민에 불과했다. 전공을 선택할 때조차 학점으로 다시 전공이 갈리는 인문학부나 사회학부보다는 처음부터 전공이 정해지는 법학과를 선택했다. 아마도 나의 학점이 매우 안좋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견했었나보다. 대학교를 입학하고나서도 나는 내가 10대의 기간을 바쳐서 이뤄낸 결과물인 대학의 네임밸류에 만족하지 못했었고 한동안 방황했었다. 꼴등으로라도 서울대에 들어가고 싶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교문에서부터 삼보일배하며 등교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독기란 고작 그정도여서 첫학기 학사 경고 맞으며 놀고 연애도 좀 해보다보니 그 생활이 익숙해져서 반수의 결심은 그렇게 흐려졌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화'에 진학한 것에 대해 현재 만족하고 있다. 물론 대학의 위상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 피곤한 것은 있지만 그래도 내가 이화에 왔기에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남자에 치이지 않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현재까지도 나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더 불편한 진실을 많이 들여다 보고 느끼게 되었고 자꾸만 이대까는 인간들과 마주하느라 인생이 더 피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화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정신나간 논리에 길들여져서 일그러진 개념녀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화를 벗어나서 내가 접한 세상은 훨씬 편협하고 불공한 것이었지만 이 거친 세상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자양분을 이화에서 길렀다.
하지만 나의 20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시간을 그리고 감정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법고시를 준비하지말았어야하고 더 영양가 있는 남자들을 알차게 만났어야한다. 20대 중반 그 빛나는 시간에 나는 고시생의 이름을 달고 신림동 고시촌의 한골목에 머리 질끈 묶고 찌그러져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합격한 친구들만큼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다. 합격한 친구들은 내가 봐도 쟤는 될 만한다 싶을 정도로 몸이 부서져라 공부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미련이 남아 고시생활에 집중하지 못했고 또 헤어진 후에는 헤어져서 슬퍼서 공부가 안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법이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더라. 그 돈과 그 시간으로 차라리 세계일주라도 했다면 후회없는 시간을 즐기고 보는 안목 또한 몰라보게 성숙해졌겠지. 고시촌은 너무 작고 답답하고 치열했다.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아름답게 기억하는 사람은 소수고 생각해보면 벽차는 남자들이 오히려 다수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에게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다. 떄로는 나에 대한 열등감에 똘똘 뭉쳐 알게모르게 나를 돌려까고 있는 남자에게 내가 맞추려고 하기도 했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세컨드였던 적도 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때려붓고 뺨때기를 세차게 때려보기도 했지만 억울하고 마음이 아파서 몇날며칠을 울었더랬다. 외로움에 쉽게 기대려했지만 상대방은 가벼운 일회성 상대로 나를 생각했던 경우도 다반사였다. 왜 더 영악하게 알찬 놈들만 만나지 못했을까.
20대에 미친듯이 책을 읽어 재낀다던가 아니면 사업이라도 구상해서 청년벤처라도 일으켜서 크게 사고 한 번 쳐볼 것을 왜 나는 그러지 못하고 어영부영 한 시대를 흘려보냈던가. 고시라는 나와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그나마 택한 것이 회사원의 길이었는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정말 맞지 않았다. 다른 종류의 회사였다면 좀 나았을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그래도 아마 결론은 난 회사는 아니올시다였을거다. 더 야망있게 욕심을 부렸어도 좋았을 시간이었다.
주변에서 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대는 것에 나는 얄팍하게 흔들렸고 이화에 대한 편견의 프레임을 나에게도 씌우려할 때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왜 그런 소모적인 것에 나의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냈을까. 그런 찌질한 병신들과 상대해줄 시간에 글을 한 편 더 쓰거나 아니면 차라리 더 멋진 놈을 물색했어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내가 지금 그런 놈들과 대면한다면 당황하지 않고 아줌마의 용맹한 주접을 담아 확실하게 조크를 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장점 중에 하나는 그런 인간들과 마주할 일이 적다는 것이다. 하필 전투력이 만랩에 올라섰을 때 상대가 없는 건 조금 아쉽다.
나에게 결혼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고 운명적인 순간의 사랑은 있을지언정 평생을 가져갈 인생의 동반자따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일일거라 생각했다. 고시를 때려치고 마지막학기에 복학했을 때 공부를 더해서 국제기구같은데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남편같은 건 어차피 필요도 없고 생기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기에는 내 학점이 턱없이 구렸다.
덜컥 해버린 결혼이지만 20대에 선택한 지금 남편과의 결혼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 남편은 나를 정서적으로 안정시켜주는 사람이고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때로는 내가 너무 치우친다 싶을 때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의외로 내가 살림을 좋아하더라. 다만 아쉬운 점은 내가 스물여덟에 지금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될 운명을 미리 감지했다면 나의 20대의 어설픈 방황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것같다. 더 용감하게 무슨 일이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미리 찾아내서 불안함없이 도전했을 수 있을 것같다.
30대가 되서 좋은 점은 뇌와 얼굴이 조금 더 두꺼워졌다는 거다. 새로운 정보나 주변의 소리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한다기 보단 어느 정도 나의 주관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욕심이 많았다는 둥 실제로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등의 악플을 받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고집이 생겨가고 남의 말 절대 안듣는 꼰대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거겠지. 그래도 특정 블로거를 따라한다는 댓글을 받았을 때는 속이 쓰렸던 것이 사실이다.
30대의 날을 또 흘려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글이라도 쓰기를 잘했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 인간이어서 가만히 내비두면 티비보고 인터넷이나하다가 새벽 6시쯤 잠들고 오후 5시쯤 일어나 하루를 자칫 인생을 그렇게 흘려버릴 인간인데 글쓰기가 나를 돌이켜보게했고 하루하루를 더 의미있게 보내도록 하였다. 나의 40대를 후회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