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의 비명

다이어트의 무한궤도

by 심효진

행복한 돼지로 살기를 선언한지 몇달이 지났을까

족히 20년은 넘도록 내 마음 속을 따라다니던
다.이.어.트.강.박.

행복한 돼지로 다시 태어난지는 불과 몇달.
지나가다가 거울을 볼 때,
우연히 뿅갹이와 찍힌 내 사진을 볼 때,
두툼해진 어깨선과 한 짐 가득실은 듯한 뱃살에
시시때때로 깊은 빡침이 다시 솟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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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행복해 난 행복해
고작 체지방 십키로 따위가 내 행복을 망칠 순 없어!
라며 급하게 주문을 외워보지만
20년 넘게 길들여진 뚠뚠이의 습관적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긴 쉽지 않다.

운동을 쉰지 3개월 가량되었다.
오랫동안 다녔던 곳에서 해오던 운동 루틴이 반복되자 더이상 근육이 자극되지 않았고 매너리즘을 느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것같아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던 중 동네에 새로 생긴 PT샵의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PT는 이제 지겨운데..
댄스나 플라잉요가같은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터였기 때문에 그닥 흥미가 생기진 않았다.
그와중에 눈에 유독 들어오는 무료체험 1회..

매번 반복하면서도 여긴 왜 다를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면서도 무료체험을 신청하고 오늘 다녀왔다.

석달만에 하는 운동에 체력은 예전만 못했다.
그와중에 낯선 예비(?)회원이 생각보다 운동을 잘따라오자 신난 트레이너는 또 열심히 내 허벅지를 조져놨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냥 먹고 싶은거 먹어가먀 행복한 돼지로 살겠다는 다짐이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아침에 무얼 먹고 왔냐고 묻는 트레이너에게

"과자랑 주스요."

라고 대답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아니 그걸 왜 드셨어요?"


왜냐고요? 나는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대답했다.


"맛있어서요."


이래서 제가 살찐거겠죠.



근력 중간중간에 유산소를 넣어주면 효율적이라며 경사를 최대로 가파르게 해놓고 트레드밀을 걷도록 시킨 뒤, 걷는다기보단 차라리 기어오르고 있는 나에게
트레이너는 물었다.

"지금 어디가 힘들죠?"


...



"마..마음이요."



오늘 처음 본 앳된 트레이너가 크게 웃었다.
아줌마의 주책은 쉬지 않는다.


"아니 회원님, 마음말고 육체에선 어디가 힘이 드나요 지금?"

이라고 되물었다.

'허벅지 조져놓고 오르막을 오르는데 넌 어디가 땡기겠냐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앙? 흐븍즈그 으즈 땡근드 으즈므니.'

라고 마음의 소리가 외쳤지만
입꼬리를 당겨올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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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벅지요. 특히 옆쪽."




"오늘 첫날이라 그런겁니다, 회원님. 앞으로 점점 더 편해지실거에요."



읭?



나 아직 돈도 안냈는데 이미 회원으로 '첫날'을 세고 있다니.



왜죠?





출산 전 무게까지 석달이면 가능할 것같다며
자신있다고 말하던 그.
왜 나는 매번 같은 패턴에 또 당하려하는가.


사실 한두푼하는 피티도 아닌데
이미 몇 번의 실패로 허공에 돈 싸지른 경험이 있는 나로썬 차마 이번엔 잘할테니 날 믿고 한번만 더 투자해달란 이야길 어찌 내 입으로 남편에게 하겠는가.

사실 다이어트란 늘 그렇다.
적당히 대충 알아서 몸무게가 빠져주진 않는다 결코.
아무리 돈을 내고 하더라도
결국 내가 배고프고 내 근육 땡겨가며 해야 살은 빠지는 법.
때마침 오늘 엄마의 블로그에서 스물여섯무렵의 내 사진을 몇장 보고 더욱 각성이 되었다.
고작(?) 8키로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선택의 기회를 앞두고 오늘밤이 깊어간다.

티비 속에서 걸그룹들은 한줌 허리를 참 잘도 돌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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