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와 도피의 촘경
'촘촘한 경계'
이 말도 안되는 표현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른 언어생활의 선구자격이여야할 아나운서의 sns에서에서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기가차서 웃던 것이 은근히 입에 붙어 이곳 저곳 쓰이다 못해 이쯤되면 '낭낭하다'와 더불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야할지 모르겠다.
마치 사람들이 패리스힐튼보고 욕하다 정들었다고 하는 것처럼 이 단어도 어이없어서 자주쓰다가 입에 붙어버린 표현이 되어버린 것같다.
주부로 살고 있다.
아니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혹자는 이대씩이나 나와서 왜 주부로 사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하고
전업주부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이대로 커리어(랄 것도 없지만)를 끊고 한 아이의 엄마로만 남기를 바라시기 않지만 사실 난 지금 이대로도 꽤 만족스럽다.
육아가 힘들긴 하지만 이미 애를 낳은 이상 일을 하건 안하건 육아는 어차피 해야하는 것이고
전업이기 때문에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줄 수 있고 집안일에 더 공들일 수 있는 것이 만족스럽다.
나와 남편은 맞벌이 가정에서 외동으로 자라났다.
어릴 땐 그냥 환경이 그런가 보다 별생각없이 큰 부족함 느끼지 못하고 자랐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 성인이 되어 돌아보니 우리에겐 커다란 공백이 있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 평일이면 운동장에 바글바글하던 아이들이
주말이면 부모님과 보내느라 싹 사라져버려서 혼자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
누군가 축구를 '함께'할 수 있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올까 싶어서 하루종일 혼자 공을 차며 그 '누군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나의 경우, 중고등학교 때 유독 정서적인 공허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재의 원인이 내가 어릴 적 '애어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똑순이었고 애늙은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야했고
엄마는 먹고 살려면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채워나가야 했다.
근원적인 물음들이 해결이 되지 않았고 나의 자존감은 얼기설기 구멍이 뚫린 그물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애늙은이' 안에는 갈 길을 읽은 '꼬마'가 살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한다고 해도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내 아이의 자존감 형성과정에서 공백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
회사는 생각만해도 넌더리가 난다.
너도 나도 부속품일 뿐이면서 인간미라고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없다.
그렇다고 심오한 학문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본투비 게으른 인간인지라 그냥 가벼운 교양수준의 공부에서 흥미를 느끼는 거지 평생을 책상머리 앞에서 희열을 느끼는 학자가 될 수 없다. 정말 다행인건 그걸 알기라도 한다는 사실쯤 일거다.
얼마 전, 친정에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영화 '베테랑'을 보았다.
보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이 나는 황정민이 되지도 못할 거면서 그렇다고 조태오하는 꼴딱서니는 죽어도 못보겠어서 지금 도피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집 안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싫어하는 꼬라지들 안봐도 되고 말끔하게 집정돈해놓고 오후에 돌아온 아이와 근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면 세상은 참 아름답다.
이렇게 계속 살면서 가끔 꽃꽂이하고 취미로 중국어배우는 수준에서 자기계발하고 애나 잘키우고 살면 내가 행복할까.
솔직히 말해서 그럴 것 같다.
만약 무언가를 하게된다면 정말 생각만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거나 머리 너무 쓰지 않고 가볍게 하는 수준에서 육아도 내가 직접할 수 있는 일, 그 두가지가 아니라면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만족하는 것인가 도피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