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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효진 Mar 14. 2022

교육소설 ep1.

학군지의 워킹맘

*본 내용은 픽션이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학원, 지명 등은 실제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민재 엄마, 민재도 3반이라고 했었죠?’


 3월, 새 학년이 시작되고 같은 반이 된 것을 확인하는 채윤엄마의 카톡이 왔다.


‘네, 민재도 3반이에요. 올해도 같은 반이라니 반가워요.’


회의에서 나와 막 카톡을 확인한 지영은 채윤엄마에게 답장을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e알리미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진다. 시간표부터 시작해서 급식 식단표, 방과후교실 신청 안내, 개인정보 활용 동의, 알림장 등 챙겨야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올해부턴 방과후교실이 다시 열리는 걸 보니 코로나로 멈췄던 학교가 어느 정도는 정상화되어 가는 듯한 분위기다. 3학년이 되니 교육청영재원, 각종 경진대회 알림까지 추가됐다. 새삼 본격적으로 학습 격차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는 3학년이 된 것이 실감 나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맞벌이인 지영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코로나로 인해 1년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직장어린이집을 보낼 때는 저녁 6, 7시까지도 아이를 맡길 수 있었는데 - 물론 그 시간도 촌각을 다투며 일하고 눈치보며 퇴근해야 했다.-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면 점심먹고 12시 반에 집에 온다고 해서 바짝 긴장해 있었건만 12시 반은 커녕 아예 학교에 가지 못한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직장 여성이 제일 퇴사를 많이 하는 때가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아닌 아이가 8살, 초등학교 입학할 때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워낙 들었던 터라 1년 휴직 신청을 해놓았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코로나로 인해 ‘이모님’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휴직이 아니었으면 어쩔 수 없이 퇴사해야했을 것이다. 어떻게 버텨낸 직장생활인데 그 상황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이 질끈 감아진다.


 실제로 사내 커플인 옆자리 혜진 씨도 유급휴가에 무급휴가까지 남편과 서로 돌려막다 결국 못견디고 한 명은 퇴사를 결정했다. 당연히 남편이 아닌 혜진씨가 퇴사했다. 남편 육아휴직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남편이 그만두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아이의 학교 적응과 학습 습관을 잡기 위해 휴직했던 1년은 삼시세끼 밥 차려주고 학교 줌 수업에 옆에서 교과서 챙겨주고 학원 라이드하다가 끝나버렸다.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단 민재에게 휴대폰을 사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지영과 남편은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중 한 곳을 나왔다. 어릴 적부터 영특했고 성실한 학창시절과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여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합격의 기쁨도 잠시, 학점과 스펙을 위해 정신없는 대학 생활을 보냈고 취업과 결혼, 출산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양가 부모님은 요즘 같은 시대에 둘이 내노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아이까지 낳아서 기른다고 매우 만족해하신다. 부모님 주변의 어른들이 모두 부러워한다고 했다.


 정작 지영은 불안하다. 입사 10년 차 지영의 연봉은 1억, 실수령액은 월 500이 약간 넘는 정도다.경쟁업체인 다른 대기업을 다니는 지영의 남편과 수입을 합하면 월 천만원을 약간 상회한다. 어디 가서 죽는 소리를 하기엔 꽤나 많이 벌고 있다는 걸 지영도 알고 있다. 신혼 초에 받았던 전세 대출 받아 놓았던 것에 주택 구입 대출 풀로 당기고 신용 대출까지 동원하여 집도 사놓았다. 하지만 언제 회사에서 나가게 될지 모르는 직장인의 운명과 우리 살 집은 마련했지만 30년간 대출 상환이 남아있다. 아직까지 우리 집에서 민재방 빼놓고 거실과 안방, 부엌정도는 은행 거다. 정작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아들 명의 집은 커녕 결혼자금이나 넉넉하게 마련해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데 그런 집안에서 낳아주지 못했으니 결국 내 아이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고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고작 직장인이 결론이라는 현실이 미덥지 않다. 직장에 몸 바쳐 일해야 남는 것은 둘이 합쳐 집 한 채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학교도 가기 전부터 열심히 살아야 하는 운명, 어차피 하는 끝에 더 열심히 해서 아들인 민재는 꼭 전문직으로 만들고 싶다. 이왕이면 의사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애가 커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영유를 나와 영어는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 수능 만점 수준으로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는 수학을 달려야 한다. 7살에 S 사고력 수학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봐서 A반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중에 다시 테스트해서 프리미어 반에 들어가야 한다. 그때부터 밀리면 가망이 없는 분위기다. 초등 저학년은 탑 반에서 보내고 나면 3, 4학년 정도에 초등 고학년을 전문으로 하는 H 수학학원으로 옮겨서 경시반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들어가면 의대 진학 테크트리에 일단은 탑승한 것 같아 약간은 안심이다. 그때부터는 2개월에 한 학기씩 본격적으로 선행 진도를 뽑으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고등학교 수학 진도를 다 나간다. 영재고와 과학고는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이라면 굳이 추천하는 진학코스는 아니지만 중학교 때 다 같이 달려보고 붙으면 그때가서 선택할 문제이고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일반고에 가서 최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다.


 많이 하는 코스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 판단한 지영은 민재를  코스에 따라 직장어린이집에서 빼고 5세에 영어유치원으로 보냈다. 일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맘카페에 매일 정보를 찾아보고 동네 전업 엄마들에게 커피를 수십잔을 사며 동네에서 어디가 평판이 좋은지 정보를 입수했다. 영어유치원의 정식 명칭은 사실 영어학원 유치부이다. 정식 유치원이 아니기 때문에 누리과정으로부터 자유롭고 비용도  20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하지만 누구도 영어학원 유치부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영어유치원’, ‘영유아니 엄마들 사이에서는 다들 학원 이름으로 부른다.  엄마들은 게이트, 애플트리, PSA, 폴리, 파커, 라이즈 등등  수많은 곳의 이름뿐 아니라 학원별 특징이나 커리큘럼, 졸업  아웃풋까지도 엄마들은  꿰고 있다. 영유 역시 입학 테스트가 존재하고 부모를 닮아 나름 영특했던 민재는 무난히 합격해 3년간 영유를 다녔다.


 ‘엄마표 영어’가 유행해 집에서 끼고 가르친다는 집들도 많다지만 그럴 시간이 없던 지영은 대신 유명 E 유아 영어 업체를 택했다. 시리즈를 다 사면 교재와 교구 값만 600만원에 달했지만 아이를 직접 끼고 가르치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을 돈으로라도 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돈 버는데 워킹맘의 장점인 내가 벌어서 내가 쓴다는 거라도 누리고 싶었다. 친정엄마가 들으면 기절할 금액이지만 교재과 교구값만 1,000만원 가까이하는 곳도 있다. 매일 매일 영어 노래를 틀어주고 일주일에 한 번 센터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민재의 영어발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영유를 다니면서부터는 스펠링도 잘 외우고 에세이 연습도 꾸준히 해서 주제에 맞춰 문단 구성도 꽤 잘한다. 월 200만원 가까이 나가는 돈이 절대 적지 않았지만 둘이 벌기에 가능했다. 영유를 보내만 놨지 지방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민재 케어를 거의 맡겼던 터라 정작 지영은 영유에 거의 가보지 못했다. 어쩌다 연차를 쓰는 날, 포르쉐 까이옌을 끌고 아이를 하원시키는 채윤 엄마를 보면 일도 안 하면서 돈이 어디서 나와 저럴 수 있을까 내심 궁금했다. 채윤엄마의 손목엔 에르메스 피코탄 백이 걸려 있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남편이 의사고 시부모님이 영유 비용을 대준다고 했다. 역시 전문직이 최고다. 빵빵한 시가에 전문직 남편까지 내심 민재가 나중에 채윤이랑 결혼하면 좋겠단 생각에  까지 이르렀을 때 아직 초등학교도 안들어간 애들을 두고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가 싶어 얼른 접었다.


 영유에서는 5명 안에 들어야 돈값한다는 말이 있다. 민재가 다니던 영유에서 5명 안에 들던 최상위권 아이들은 국제학교 1명, 사립학교 1명, 1명은 대치동으로 이사가 버리고 민재와 채윤이만 이 동네 공립초등학교로 진학했다. 지영도 부동산 어플에 대치동 집값을 검색해보았지만 전세가만 20억인 대치동은 엄두가 안 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은 이제 영어는 문제가 아니다. 민재는 해리포터 정도는 영어로 무난히 읽는다. 올해부터는 윔피키드에 빠졌다. AR 5.5 정도의 윔피키드를 키득거리면서 읽는 것을 보니 역시 영유의 효과가 좋긴 좋다 싶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유 연계 학원에 다니고 있다. 같은 반에 영유 출신이 아닌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일유 출신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영어학원은 따로 존재한다. 영유 때보다는 영어노출량이 줄어서 빛의 속도로 까먹을 수 있다는 선배엄마들의 한탄과 경고가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은 이제 본격적으로 수학을 달려야 할 때다. 3학년인 올해에는 레테를 보아 H 수학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다. 이 숨 막히는 일정을 잘 소화해주고 있는 민재가 짠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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